한국일보

장자연 자살이 의미하는 것

2009-04-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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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 (전 언론인)

탤런트 장자연 양 자살사건으로 지금 한국사회는 두 달이 넘도록 뒷 얘기가 무성하다. 꿈 많던 젊은 여성이 목숨을 내던지며 한국연예의 비리를 고발한 이번 사건은 관음적 호기심을 넘어 여성인권과 법률 앞에 평등이라는 보다 차원 높은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지난 3월초 20세의 장자연 양은 분당아파트 자리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대학원 학생인 그녀는 자신이 직접 썼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페이지마다 손도장을 누른 유서를 남겼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본인 자필임을 확인하였다. 장양은 이 문건에서 자신을 농락한 남성들 이름을 밝히고 이들과 어울렸던 시간들이 “...악마들과 함께 한 지옥이었다...”고 묘사함으로써 성상납을 강요당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모 일간지의 사장형제가 리스트에 올라있는 등 언론권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해서 특히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의원이건 다른 신문, 방송 등 언론기관들은 이 사건을 거론하면서도 리스트에 있는 이름을 거명하면 곧바로 모 일보 명의의 명예훼손 고소가 뒤따르고 있어 한국은 지금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 한다. 검찰은 얼마 전 중간수사결과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제대로 된 수사를 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이다.

한국 헌법에 천명된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민주주의 이념과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규정도 무시되고 있다. 한국에서 군사독재시절 청와대 경호실은 연예인의 대기소였다. 백주 대낮에도 기관의 지프가 영화촬영장에까지 들이닥쳐 여배우를 실어갔다고 한다. 정보기관에는 이런 일을 전담하는 현대판 채홍사가 있었다. 독재자가 암살당한 장소는 질펀한 주색 파티 장이었다. 배우 지망생이 거부하거나 눈 밖에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고 출세는 꿈도 꾸지 말아야 했었다. 반대로 눈에만 들면 신인이라도 스타덤에 오르고 연말에 각 방송사가 주관하는 연예 관련 상이 선물로 차려졌다.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뒤를 이어 등장한 돈이 지배하는 민주화사회에서도 연예인의 노예적 처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돈과 권력의 요구에 따라 술을 따르고 웃음을 팔고 몸을 허락해야 하는 현대판 기생이었다.

최근 들어 많은 연예인들이 자살하였다. 돈에 의한 인격파괴와 성의 착취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이 자살하면 언론들은 우울증이라고 보도했다. 우울증을 피할 수 없게 만든 배후의 먹이사슬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이번 장자연 사건으로 세상은 이 먹이사슬의 고리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있다. 모 신문은 장양이 남긴 리스트가 근거 없는 것이고 입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며 강경대응하고 있다.

경험법칙상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엄숙하고 진지해지며 농담하거나 거짓말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형사증거법에서도 임종의 진술에 대해 특별한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장양이 생면부지의 모 일보사장에 대해 특별한 사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보여진다. 당사자가 떳떳하
다면 신문사 뒤에 숨어서 법인이름으로 고소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나와 자신의 이름으로 해명하고 반격하는 것이 정도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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