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참으며 기다리는 습관

2009-04-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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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논설위원·목회학박사 )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줄을 서서 잘 기다린다는 것이다. 은행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막힐 때에도 ‘빵빵’거리지 않고 잘 기다린다. 이처럼 기다리는 것 하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잘 배워야 할 것 같다. 성질 혹은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잘 기다리지를 못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있는 약점 중 하나다.

기다림은 참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잘 참는 사람들은 잘 기다리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잘 참지를 못한다. 성격이 급한 것은 타고날 때부터, 즉 부모의 성격을 닮아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성격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고치지 않으면 자신의 성질을 이기기 힘들기에 사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 될 것이다.사실 인생 그 자체를 잘 들여다보면 기다리다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기다린다. 엄마의 배 속에서 잉태되어 태어날 때까지 9개월에서 약 10개월 정도를 기다려야만 태어날 수 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기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며 사지가 온전히 달린 인간이 되어 ‘으앙’하며 세상 밖으로 나온다.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림이 시작된 인간은 궁극적으로 또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된다. 죽음이란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호흡이 끊어지는 그 순간이 오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듯 잘 살아간다. 기다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늙으면 오는 것이 죽음임을 사람들은 잘 알고 살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늙음 자체도 기다림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빨리 빨리’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연습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기다리는 것도 습관들이고 연습하면 될 것이다. 계단을 올라갈 때 첫 계단에서 꼭대기까지 한 번에 오를 수는 없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야 한다. 오를 때도 그렇지만 내려 갈 때는 더 조심히 내려가야 한다. 한 계단만 잘못 밟아도 그대로 굴러 떨어지기에 그렇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단계 한 단계 조심스럽게 기다리며 더 나은 삶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 같다. 일확천금을 바라보며 단 한 번에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려 하는 사람들은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모든 것은 다 순서가 있는 법이요 순리대로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잘 되는 것 같다. 자연만큼 인간들에게 기다림을 가르쳐 주는 것도 없는 듯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확실하게 있는 곳에서는 봄이 오고 바로 겨울이 오는 법은 없다. 봄이 오면 기다렸다 여름이 온다. 여름이 오면 기다렸다 가을이 온다. 가을이 오면 기다렸다 겨울이 온다. 그리고 또 자연은 기다렸다 봄을 맞이한다.

지구의 돌아감에서도 기다림은 나타난다. 낮은 밤을 기다리고 밤은 낮을 기다린다. 태양이 비쳐지는 곳이 낮이요 태양이 비쳐지지 않는 곳은 밤이 된다. 태양의 빛을 기다리면 반드시 환하게 밝아오는 낮을 맞이하게 된다. 쉼을 얻게 되는 밤을 기다리면 태양은 모습을 가리고 달이 뜬다.
그래서 사람은 밤을 맞이해 쉼을 얻고 내일을 기다리며 힘을 축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군에 간 사이 몇 해를 기다리지 못하고 신발을 바꾸어 신는 여인도 있을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결과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기다림 속에는 순수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낳는다. 그리움은 사랑 그 자체가 된다.

집을 나간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기다림 속에는 들어 있다. 그 기다림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다.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아들이 거지가 되어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크게 잔치를 베풀어 아들을 맞이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순수한 기다림이다.
세상사. 기다리면 모든 문제가 어떻게 풀리던, 해결될 것이다. 기다려서 해결 안 될 것은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 참고 또 참고 참아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것이다. 자동차가 밀려도 새치기 안하고 묵묵히 자기의 노선만 따라가는 이 곳 사람들의 기다림을 배워야겠다. 성질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잘 참고 기다리는 자가 나중엔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하늘은 인간을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기다림은 그리움이요 그리움은 사랑의 순수 결정체이다. 참으며 기다리는 습관을 들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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