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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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값을 어떻게 해야 하나

2009-04-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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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수필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나이 값을 어떻게 해야 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어느 모임이나 종교단체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세상살이를 알만큼 알아서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고 곧잘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과연 마음을 어느 정도, 어느 선에서 비웠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마음의 척도는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가늠할 수도 없기에 집으로 보면 대문 앞인지, 아니면 대문 안까지인지 혹은 대청마루에서 아예 안방까지 비워 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본에 갔다가 우에노 공원에서 홈리스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에게 먹을 것과 거처를 마련해 주어도 막무가내로 공원에서 살겠다고 한다고 한다.그들이야 말로 마음 비우기를 안방까지 내주고 거리로 나 앉은 진짜 욕심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를 우에노 공원 야시장에서 팔다 남은 음식을 먹고 밤이 되면 자기 몸 하나 누울 공간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마음을 비운 게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생의 의욕은 물론 어떤 규율과 체계에 억압되기 싫은, 그야말로 책임이 없는 게으른 사람들로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염치는 있는지 새벽같이 일어나 공원을 말끔히 청소를 해주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일거양득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었다. 언젠가 한국에 가니 서울 중심가인 파고다공원이나 종묘 근교에 할아버지들이 우루루 모여있는 것을 보고 서울 비둘기라고 했는데 요사이 서울에 가보니 비둘기가 아니라 아예 거리에 자리잡고 사는 홈리스들같았다. 거리마다 또는 전철 층계에 줄줄이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고 아무리 교통수단이 공짜라도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낄 정도의 교육과 생활수준이 높아졌는데 웬 거리의 천사들인가 싶었다.

분명 그들도 나름대로 사연은 있겠지만 그래도 내 집은 아니라도 자식들하고 살던, 그렇지 않던 어딘가 살만한 터전에 먹을 양식이 있을 것인데 무료해서 답답해서 거리에 나와 앉았다면 너무 자신만 생각하는 일종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다 산 인생이라도 창창한 젊은 세대의 앞날을 위해, 거리 환경을 위해 답답하고 무료해도 노인정이나 가까운 동료들과 어울려 무언가 배우거나 소일거리를 찾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중국 여행에서 한 후덕해 보이는 할머니가 앞에 나와 인사를 하기를 이번 여행길에 “나이를 먹은 저희들이 참여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러는 몇몇 노인들이야 말로 행여라도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걱정을 했고, 실제로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오
히려 더 열심히 남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 관광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잘 지켜주어 무사히 여행을 끝마칠 수 있는 것을 보고 역시 나이를 먹어도 나이 값을 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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