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어느 소상인의 하소연

2009-04-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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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 (취재 1부 부장대우)

기사 마감을 끝낸 저녁 무렵 느즈막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랜 만에 듣는 델리업소 사장의 목소리. 그는 반가운 인사가 끝내기 무섭게 현재 겪고 있는 속앓이를 30분 이상 털어놓았다.“최근 신문·방송에선 경기가 회복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데 도대체 실물 경기는 언제나 풀리는 겁니까? 이제는 어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자금 구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보지만 고사 직전입니다.” 그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5개월이나 밀린 렌트 때문에 다음 달이면 쫓겨날 판인데 자금 융통도 그렇고...”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조만간 저녁 약속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 경제 불황이 지속되면서 한인 자영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수년간 이어져 온 불황으로 끝내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는 주변의 업소들을 보면서 상인들은 “혹시 우리 업소도?”라는 불안함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즘같은 시기 하루도 ‘쉬운’ 날이 없기는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한인 소상인들이 가장 지금의 경기침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신용 경색 파장으로 은행 돈줄이 막히면서 자금난을 겪는 한인 자영업자들이 대거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거나 계를 통해 자금융통을 하다가 여러 부작용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고금리 사채시장에가 발을 들여놓았다가 상환능력이 안 돼 파탄 지경에 빠지는가 하면 상인들까지 조직한 계가 하루아침에 깨지면서 뭉칫돈을 날려버리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빚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은 물론 아예 빈털터리가 돼 애지중지 키워왔던 사업체를 빚쟁이한테 넘겨야 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한인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문턱까지 높아지면서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한인 소상인들이 고리사채라든가 낙찰계 등 사금융을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이 같은 사금융은 불법적인 요소는 물론 위험성이 높아 자칫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걱정했다.

대부분이 소상인인 자영업자들은 경기 침체로 이미 수년 째 ‘매상 폭락’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자금 융통마저 원활하지 못해 고리사채나 계 등으로 연명해야 한다면 앞서 본 사례처럼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를 일이다. 소상인 자영업자들을 위한 자금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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