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설 쓰는 언론

2009-04-24 (금)
크게 작게
한재홍 (뉴욕신광교회 목사 )

사람들은 언론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잘 알고 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거짓이라도 참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언론은 사회의 양심이 되고, 사회를 바르게 선도하는 룰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소설을 쓴다. 그 소설들이 때로는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사실이 아닌 허구다. 소설가가 자기 마음으로 소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판 신문이나 TV를 보면 어디까지가 참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판가름하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실을 다루려면 확실한 결과를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아직 결과가 없으면 그것을 기사화해서 사회를 오도하거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때 한국에서는 흉악범의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하느냐 아니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느냐로 시끄러웠다. 그런데 요사이 모든 일들을 보면 추측을 가지고 결과인양 야단을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사실이 힘이 있는 것이지 한 시대를 잘못 인도하는 언론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글쟁이들의 마음을 꺾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역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언론을 매도하고 아니 숨도 못 쉬게 잡아 휘두르며 사실을 잘못 인도했던 어두운 두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역사나 사실을 속일 수가 없어 시간이 지난 지금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했다. 그런데 지혜로운 현대인들은 늘 눈 감고 아웅 하는 되풀이를 하려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지 퇴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언론은 소설을 쓰면 안 된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결과를 알려주어야 한다.

70년대 초 중국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엄한 정치를 하고 있을 때도 미국에 유학생을 매년 100명이상 국비로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모택동은 저들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1/10만 돌아와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어디에 있든지 너희들은 중국인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부탁했단다. 저들은 공부하고 미국에 남았다. 지금 저들은 누구인가? 중국의 성장 원동력인 엘리트들이다. 지금 저들은 미국을 능가하려 한다. 역사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정신을 주도하는 언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저들은 정적을 절대로 죽이지 않으려는 정책을 쓴단다. 언제 저들이 필요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여 버리면 필요할 때 다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다 죽여야 속이 시원하다. 그러다보니 역사가 한 풀이로 얼룩지고 좋은 인재들은 다 없어지고... 이런 일에 언론은 함께 춤을 춘다. 역사를 두려워하고 사람을 살리고 격려하는 일에 쓰임 받는 펜이 되었으면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