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를 건드리는 것들

2009-04-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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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 (수필가)

나는 어려서부터 공상을 좋아했다. 동화 속의 왕자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기도 하고 신데렐라 신드롬을 갖기도 했다. 이것이 때로는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한 동안 40-50대 아줌마들까지 꽃남[꽃보다 남자]에 열광했다. 꽃남 패러디가 유행하고, 극 중에서 그들이 타고 다닌 외제 자동차는 7~8천달러를 호가하고, OST 매출이 20억이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일본진출로 신문 연예란마다 꽃보다 예쁜 네 남자가 등장한다. 패션브랜드인 리바이스트라우스 시그니처는 이민호의 화보로 가득 채워진 달력도 제작한다.

황당한 스토리와 엉성한 전개, 과장된 연기 등 도대체 무엇이 꽃남을 그렇게 뜨게 만들었을까? 신선하고 풋풋한 기를 받아 젊어지고 싶은 욕망인가? 보기만 해도 생동감 있는 청춘들이 그들 방식대로 고뇌하고, 반항하고 우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우리 세대와 다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 얼기설기 얽혀 인생을 바로 배워나가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내의 유혹’은 더 말도 안되는 드라마다. 주인공 은재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몇 가지 바뀌어진 면이 있다하지만 몇 년을 살을 맞대고 산 남편이나 심지어는 낳아서 기른 부모까지도 몰라본다는 것은 코웃음을 칠 일이다.


거기다 무조건 버럭 버럭 소리만 질러대는 애리에게 시청자들은 호평을 한다. 애리는 승승장구하며 은재의 방에 무상으로 출입하며 온갖 정보를 빼낸다. 몇 백 억이 나가는 땅문서는 허술하게 책상서랍에 그냥 들어있고 십억이 들어있는 핸드백은 애리 앞에서 그냥 무방비로 두고 나간다.
애리는 CCTV를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닌데 꼭 중요한 순간에 숨어있다 비밀을 다 알아낸다. 막장에 더 기가 찬 것은 민소희 마저 살아서 돌아와 애리와 합세하고 거기에 불치병이라니 극적인 요소는 다 끌어다 붙였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시청자들이 거기에 공감을 해서 같이 분노하고 애절해하고 웃고 눈물 흘리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들, 때로는 억지를 써서라도 시원하게 질러 버리는 데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60대 중반의 여자에게 5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밀며 프로포즈를 하는 70대의 남자는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결혼을 선포하고 최신식 웨딩드레스를 맞추고 150명의 하객을 그림 같은 결혼식장으로 초대했다.마치 여왕 같은 대접을 받으며 아직 여자임을 과시하는 65세의 신부에게 그 나이에 무슨 결혼인가? 하는 부정적인 반응과 부러워하는 시선이 엇갈렸다. 정말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남들의 이목이 뭐가 두려우랴.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을 위한 책임있는 선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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