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

2009-04-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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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고문)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90주년을 맞은 지난 13일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임시정부가 광복이후 대한민국 건립의 토대를 마련한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하면서 순국선열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대통령은 임시정부의 기본정신인 대동단결정신을 본받아 지금의 위기를 일류국가 건설의 기회로 만들고 나아가 통일의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전문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명시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임정이 매우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다. 해방정국에서 임정이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그 역사적 지위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고 임정을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에 관계했던 사람들은 사회의 주역에서 밀려난 채 향수를 달래는 노인들로 취급받아 왔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임시정부를 폄하하는 일까지 나타났다. 즉 임정은 통치권을 행사한 국
토와 국민이 없어서 국제적으로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임의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침략후 임시정부의 성격을 띤 7개 단체가 통합을 이루어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13일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대내적으로는 독립운동의 통합기구 역할을 했고, 국제적으로는 국가의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정부와 같은 기능을 했다. 임정은 국내외의 독립운동을 조직하여 외교활동과 군사활동, 의열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런 활동의 일부는 정부의 활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임정의 외교활동은 처음에는 미국, 소련, 유럽각국을, 그리고 후반기에는 중국을 중점으로 전개되었다. 해외에는 서재필의 필라델피아 통신부, 이승만의 구미위원부, 김규식, 조소앙 등의 파리위원부 등을 두어 활동을 벌였는데 그 성과가 매우 컸다. 미국과 파리에 한국친우회가 설립되었고 영국의회에 한국친우회가 생겼다. 특히 파리위원부는 제2인터내셔날에서 한국독립을 승인 받았고 교황 베네딕트 15세로부터 한국의 조속한 해방을 염원하는 서신을 받기도 했다. 유력 정치인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참가한 한국친우회는 독립운동을 음양으로 도왔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 등 유럽에서만 3.1운동이후 1년5개월간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신문기사가 500회 이
상 보도되었다.

임정은 타국 내에서 공식적인 군사활동이 불가능하였으므로 주로 만주의 독립군단체를 지원하다가 후에 중국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사관을 양성하였다. 임정은 1940년 광복군을 창설하였고 2년후에는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와 통합으로 광복군을 확대하여 지청촌사령관 밑에 3개 지대를 편성했는데 그중 2지대가 미군특수부대인 OSS와 합동작전으로 한반도 상륙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작전을 불과 며칠 앞두고 8.15해방이 되는 바람에 합동작전이 무산됨으로써 우리역사의 방향이 달라지고 말았다. 만약 이 작전이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면 임시정부는 2차대전 참전 연합국으로 인정받아 건국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리하여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사태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임시정부가 해방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건국이후 쇠퇴한 이유는 첫 번째로 미소군정의 실시 때문이었다. 군정당국은 군정에 걸림돌이 될 수있는 국민의 대표적 성격을 가진 정치기구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집단귀국을 허용하지 않았고 국내에서 임정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참가자들이 모두 개인자격으로 귀국했던 것이다. 또 두 번째 이유로는 국내와 국외의 독립운동세력에 지지기반이 없었던 이승만이 신생국가의 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친일파와 손을 잡게 됨으로써 임정을 비롯한 독립운동세력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해방후 친일파 숙청의 실패로 인해 한국 각계에서 친일파의 후예들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독립운동가의 후예들은 사회의 밑바닥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기회주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도 친일파 숙청의 실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대통령이 임정의 정통성을 다시 강조한 것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기리는 것은 그들의 기여와 헌신을 인정해주는 것을
넘어서 후세에 민족정기와 애국애족의 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차제에 임정뿐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 독립정신을 바탕으로 남북통일을 성취하도록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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