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2009-04-08 (수)
크게 작게
최덕희 (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지만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명제처럼 역시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속에 공존하고 있는 선과 악, 즉 하와가 뱀의 간교하게 속이는 달콤한 말에 빠져 죄를 짓
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선, 악의 의지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에는 이런 일화가 전해져 온다. 그는 예수와 가롯 유다의 모델을 놓고 고심했다. 한없이 자애로운 평화의 상징이면서 카리스마있는 예수와 그의 사랑받는 제자이면서 은 30냥에 예수를 로마병정에게 팔아넘기는 가롯 유다의 교활하고 이중적인 이미지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었다. 우연히 만난 어느 젊은이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렸다. 남은 관건은 가롯 유다. 그는 삼년을 찾아 헤매다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패악을 부리고 있는 유다를 만난다. 그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삼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의 모델로 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거친 세파에 흔들리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술과 노름에 의지해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 선한 눈망울을 가졌던 젊은이에게 순조롭고 평탄한 삶이 주어졌더라면 어떠했을까? 혹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가혹한 시련들이 끊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변해갈까? 우리는 항상 선악의 의지와 싸우며 산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행동을 절제하며 나를 포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속에서 움츠리고 있던 악이 나도 모르게 밖으로 표출되며 어느 순간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 때의 내 모습만을 본 사람들은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또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이중인격자라고 지탄할 것이다. 그래서 남을 의식하며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다 보면 줏대가 없이 우유부단해 보인다.요즈음 어려운 경제의 여파로 총기 난사사건, 은행강도 빈집털이 등의 우울한 뉴스들이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로버트 스티븐슨은’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킬박사는 자기 속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알약을 제조해 낸다. 낮에는 평판좋은 의사로, 밤에는 하이드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절제되었던 부분을 마음껏 분출하며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약의 부작용으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악에게 잠식당하게 된다. 그의 속에 있는 괴물은 모습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의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힘들다고 다 세상을 비관하며 삶을 포기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절제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근면과 성실로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두 개의 성품을 윤리와 도덕, 종교라는 가르침으로 승화시켜 하나의 인격체를 완성할 때 우리는 원숙한 아름다움을 지닌 좋은 사람이 되어 밝고 건전한 사회를 이룰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