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 싯 돌

2009-04-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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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부싯깃을 놓고 부싯돌을 힘차게 서로 치면 돌에서 떨어지는 저 작은 불똥이 과연 불을 붙일 수가 있을까? 의구심이 먼저 간다. 그러나 점화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온도의 그 작은 불 조각이 쑥 잎을 볶아서 만든 부싯깃에 떨어져 불을 일으키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작은 부싯돌의 불똥마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사회란 밝은 햇볕아래에서 모범생만 사는 데가 아니라 그늘을 찾아다니는 불량배도 살고, 우리가 배워서 익힌 정도(正道)의 윤리가 아니라 부정한 윤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도 같이 살고 있다.
어느 쪽에 신경이 더 많이 가는가에 따라서 올바른 사회냐 아니면 혼란한 사회냐가 판정이 되는 것이다.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박테리아는 눈에 띠지 않게 그 형체를 최소화하면서 위력을 발휘하고, 아무리 촉수가 밝은 해라고 해도 해를 등진 그늘은 밝히지 못한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공존하는 곳이 사회이고 그것이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에게는 슬적슬적 지키지 않는 법보다는 스스로 강하게 지키려는 정조(貞操)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정조(貞操)의 글자를 정조(正操)라고 바꾸어 쓰기를 좋아했다. 생명같이 여기는 여인들의 그 정조관념을 우러러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관념이 다 무너져 가고 있다. 청교도 후예의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이 낙태를 법으로 허용한다니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하느님의 뜻이 망가지고 있다.

글쎄, 부끄럽다고나 해야할지, 아니면 정열이 부럽다고나 해야 할지...
여자들의 불법낙태 순위로서 세계 제 3위가 한국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더니 이제는 내가 사는 미국마저도 세계에서 제 1위가 될 날도 멀지 않은 듯 하여 한숨부터 나온다. 아비로서,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머리가 혼란스럽다. 다른 것은 다 못 믿어도 여자들의 정조 관념만은 믿고 싶었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이라도 여인들의 정조관념만큼은 부싯돌이라고 여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류 상 기록에 올라있는 낙태 건수만 해도 일년에 약 35만이고, 기록 없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낙태 건수를 포함한다면 일년에 약 150만 명의 생명이 소리 없이 무참하게 죽어간다는 고려대 의대 교수 김해중 박사의 이야기다. 여고생들마저도 심심치 않게 낙태수술을 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오는데 그 모습이 무슨 감기나 몸살을 앓는 정도로 여기면서 “실실 웃으며” 찾아온다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다. “낙태는 대수롭지 않다”. 젊은 여인들의 의식이 이 정도로 바뀌어 간다면 우리만의 사회가 아니라 전 세계의 인류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까?

낙태 천국인 소련은 임신을 한 여성가운데 약 60%가 공식적으로 낙태를 하고, 99년 동안을 불란서 식민지 통치아래에서 살다가 독립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쟁을 치른 월남도 낙태에서는 만만치 않은 약 40%가량의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낙태하러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사유가 분명한 공식적 낙태건수 뒤에는 비공식 불법낙태 건수가 몇 배로 많다. 가정교육은 다
어디로 갔으며, 종교 교육은 다 어디로 갔고, 학교교육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성은 향락의 도구도 아니고 유희의 도구도 아니며 불씨를 안고있는 부싯돌이다.

부싯돌과 같이 사람의 행위에는 선과 악의 불씨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빈틈없이 알아야 한다. 맑고 꼿꼿한 정신을 위해 야합을 모르는 종교단체에서 나서야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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