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기경과 부활

2009-04-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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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 (목사·시인)

얼마전 우리는 친구요, 스승이요, 어버이신 김수환 추기경의 별세를 맞아 깊은 애도의 마음을 안고 있다. 선종이 남긴 텅 빈 공간에 그림자 몇 개를 글로 그려본다. 오래 전 한 일간 신문에 난 일화로 어느 새해 첫날 그가 창녀촌을 찾아 그들과 내기 윷놀이를 하고 천원(당시 1달러)을 땄다. 그것을 가지고 그냥 가려하자 같이 놀던 그들이 바지자락을 움켜쥐고 돈을 놓고 가라고 응석을 부릴 때 끝까지 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는 이야기다. 얼마나 미학이 있는 인간미 있는 모습인가!

독일의 히틀러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저항가였던 본훼퍼 목사가 미국의 민권운동가 교수들에게 초청을 받았다. 친구 라이홀드 니버 등이 그의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일이었다. 그가 미국에 왔을 때 테니스게임을 했는데 미국의 친구들이 그를 위로한다고 게임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져 주었다. 게임이 끝난 후 본훼퍼가 “이제는 다시 당신들과 테니스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단다. 게임의 윤리다. 그후 그는 히틀러에게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갔다.


군사독재가 서슬이 시퍼렇던 70-80년대 고국은 연. 고대를 중심으로 많은 대학들이 일어났고 정신적 요람이었던 한국신학대학(김재준, 문익환, 안병무, 문동환, 서남동, 박형규 등)이 큰 파도를 타고 있었다. 그 때 청와대와 명동성당은 큰 줄다리기 싸움이 벌어졌다. 독재냐, 민주화냐의 기(氣)싸움이었다. 그때 민주화의 산실인 명동성당에 김추기경이 수문장으로 끝까지 버티고 서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는 한국 현대정치사에 인권과 정의의 서곡을 위해 큰 획을 그었다. 그가 남긴 신체기증 운동으로 많은 자들이 더불어 살 것이고 마지막 그가 기증한 눈으로 한사람이 아름답고 밝은 세계를 볼 것이다.

예수께서 눌린 자, 병든 자,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어 은혜의 해를 주시고 부활하셨으니 그의 뒤를 따르던 김추기경도 영원히 예수님 곁에 있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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