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순이기 때문에

2009-03-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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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수필가·목사)

우리는 일상 용어 가운데 모순(矛盾)이라는 말을 비교적 많이 사용한다. 모순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가?“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또는 서로 대립하여 양립하지 못하는 관계, 예컨대 유(有)와 무(無), 동(動)과 정(靜) 따위”라고 국어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말이나 행동이 사리에 맞지 않고 비논리적일 때 우리는 모순되다고 말한다. 모순이라는 한자(漢字)는 “세모진 창 모(矛)”자와, “방패 순(盾)”자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창과 방패라는 뜻인데 그 말의 유래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어느 사람이 창과 방패를 가지고 길거리에 나와 팔면서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고, 그 어떤 창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고 선전을 했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돌이켜 인간 생활을 점검해 볼 때 모순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 많은 모순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는 그 교리에 있어서 모순됨이 적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이라 일컫는 성경에는 모순된 말과 사건들이 무수하게 기록돼 있다.


우선 신앙의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모순 덩어리다. 우선 그의 탄생부터가 모순이며, 33년 간의 그의 생애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의 죽음과 부활이 모순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를 일컬어 신인(神人) 양성(兩性)을 겸전(兼全)하고 있다는 것 부터가 모순이다. 우리의 논리대로라면 사람이든 신이든 그 어느 한쪽만이어야지 어찌 사람이자 신이며 신인 동시에 사람이란 말인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억설처럼 들린다. 그리하여 기독교 초기에 나타났던 <영지주의>학파에서는 인간의 논리와 이치에 맞는 학설을 만들어 유포했는데 <가현설(假現設, Docetism)>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잠시 이 땅에 내려와 나사렛에 살고 있는 경건한 청년 예수라는 사람에게 들어가 3년 동안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활동하다가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미움을 산 나머지 신성모독죄로 체포되어 결국엔 십자가에 처형되고 말았는데 십자가 상에서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외칠 때 3년 전에 들어갔던 그리스도의 영이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그럴사한 학설을 만들어 냄으로써 신인양성(神人兩性)의 모순을 적당히 메꾸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모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모순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죽어 장사되어 무덤에 묻혔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봤기에 저들은 입소문을 통해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게 되었고 다급해진 당국자들은 부랴부
랴 목격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무덤을 지키던 파수병이 잠든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둑질해 갔다고 허위 유포를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이요 절정인 것이다. 신불신 간에 모든 인간들의 염원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도서 3:11)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교부 터툴리안은 “모순되기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다”는 명언을 남겼던 것이다. 너무나도 큰 진리는 역설(逆說, Paradox, 틀린 것 같으나 참인 것)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달아 다소곳이 수용하는 지혜로운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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