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가집은 빈대가 아니었다

2009-04-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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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 (골동품 복원가)

60년대말 새마을운동으로 전국이 요동칠 때 나는 이런 글을 사상계에 기고한 바 있다. ‘초가집은 빈대가 아니다’ 이 글로 인해 남산에 끌려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호되게 곤욕을 치르고 3일만에 풀려나 남산대문을 나오면서 ‘갈릴레오’를 연상했다. ‘초가집은 빈대가 아니다.!’고

200층 초고층빌딩이 들어서는 판국에 웬 초가집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이유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조직하여 백년, 이 백년 걸리는 국가브랜드를 현재 한국의 국가브랜드 33위를 2013년까지 15위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MB의 토목공사식 발상이다.
국가브랜드는 그 나라의 위상보다는 정서를 의미한다. 위상이 당사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좌우한다면 정서는 문화적 인상이 크게 좌우한다. 현재 국가브랜드 1위는 독일이다. 질서와 기술.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게르만의 민족정서!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조국을 통일시킨 독일의 저력! 600만 유대인학살이라는 나치의 치부를, 프랑스 무명용사비 앞에 무릎꿇고 속죄하는,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의 한 방울의 눈물로 희석시킨 용기와 슬기로 국가브랜드를 다져 나갔다.


국가브랜드의 기준은 힘보다 오히려 정서를 중요시한다. 70년대초 한국을 관광차 방문한 무명의 영국인 기행문을 읽은 일이 있다. “거칠게 몰아치고 있는 농촌개조운동(새마을운동) 가운데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한국전통 초가집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선사시대 주거문화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슬기롭게 진화시킨 눈앞의 조선초가집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얼마나 부끄럽고 분통이 터졌는지 모른다.

새마을운동이 민족개조운동에 버금가는 역사성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초가집을 빈곤의 상징물로 삼고 마치 빈대라도 박멸하듯이 군화발로 짓이겨버린 것은 군사문화 무지의 소행으로 접어두기에는 너무나 큰 민족문화의 손실이다.나무로 기둥과 석가래를 세우고 벽은 갈대로 엮어 황토를 바르고 벼로 지붕을 이은 것이 초가집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훈훈한 초가집! 지구상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주거지인 조선의 초가집이 왜, 어째서 빈곤의 상징물로 낙인찍혀 빈대같이 죽어야 했는지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기와집은 잘도 개량하여 한옥 촌으로 육성시키면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 500년 동안 99할의 주거지가 초가집이었다는 절대 주거문화유산이 한민족에 의해 이토록 수모를 겪어야 하다니 슬픈 일이다.

국가브랜드를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가 관광문화이다. 관광문화상품은 백년단위로 넘어가는 문화유산을 거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한국관광을 유도하는 전통문화상품으로 초가집은 훌륭한 효자물이다. 한반도의 지세는 유연한 파도형이다. 그런 산세의 양지바른 곳에 엄마의 젖가슴 모양 들어앉은 초가마을의 먼발치 경관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초가집 비극은 땅을 치고 통곡할 정도로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관광문화 브랜드 차원에서 고속도로변 양지바른 산기슭에 원형에 충
실한 초가마을을 조성하여 관광문화에 이바지하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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