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정치판 쓰나미

2009-03-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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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 (의사)

지금 한인사회는 3월 23일 밤 열린 한국 야구대표팀과 일본과의 미국 월드베이스 볼 클래식 결승전에 이어 며칠 남지 않은 뉴욕 한인회장 후보들의 선거전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LA 다저스 야구경기 관중석에서는 투수가 현란한 몸짓으로 던지는 야구공이 홈런을 터뜨리는 순간 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응원하는 한인들이 하나로 뭉쳐있었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정치 모두 경기가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잡아당긴 고무줄처럼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인사회 선거전의 풍경은 어떤가? 합동토론회에서 띠를 두른 후보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선거공약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제스처를 보면 마치 정치무대로 진입하는 국회의원선거 유세 현장 같다. 한인이민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봉사단체장을 뽑는데 왜 이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재외동포 참정권 부여라는 유혹 때문일까? 만약 정치 수업을 받지 않은 한인이민 1세들이 한국 정치판에 입문하게 된다면 정치견습생으로 진흙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들이 한국정치인으로 변신한다면 미주 한인사회에 오히려 도움보다는 부작용이 많아질 것이다.열심히 땀 흘리며 어렵게 일구어놓은 이민 1세들의 터전은 한국 땅의 변두리관할구 지역인 뉴욕 구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뿐인가, 미국 이민의 땅은 경상도, 전라도로 또 여러 갈래로 찢어놓을 것이다. 재외동포들이 할 일은 현주소인 거주국에서 정치력 신장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또한 한국 정치인들은 재외동포들이 무궁한 잠재력을 지닌 인적 자산임을 모르는 세계관이 없는 근시안들이다. 중국, 유태인, 인도는 재외동포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그들의 자본을 국가경제성장에 활성화시키는 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마련한 집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문턱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이민초기에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로 다닐 수 있는 곳에 집을 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동네는 유태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동네였다. 나는 유대인들이 정착한 미국의 가나안 땅에 사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회당(시나고그)을 짓고 이를 구심점으로 유대인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회당에서는 전통적인 검은 옷과 모자를 쓰고 귀밑으로 머리를 땋아 내린 어른과 아이들이 율법암송과 그들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예배 의식을 진행한다.

그 후 내가 오랫동안 일했던 클리닉도 90% 이상이 창백할 만큼 하얀 피부에 동그란 모자를 머리에 얹고 다니는 유태인들이었다.패스 오버(Passover)나 욤 키푸르(Yom Kippur)같은 유태인들만의 축제 휴일에는 그들이 출근하지 않아 클리닉이 텅 빌 정도였다. 내가 그들을 부러워한 것은 세계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태인들의 정착을 돕는 풀뿌리 단체들이다. 뿐만 아니라 아랍국가에 둘러싸여 대립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미국의 동맹국가로 묶어 모국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은 한인이민 1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정치에 뛰어들기에는 정치풍토가 성숙해 있지 않다. 태어난 모국과 거주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신장되었을 때 한국과 미주한인사회는 힘의 균형을 이룬 수평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는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외동포들은 역전의 삶을 살아온 이민개척자들이 아닌가? 재외한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정치 굿판을 벌인다면 미주한인사회에 한국정치판 쓰나미가 강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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