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인 전쟁

2009-03-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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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맨해탄 파크센트럴 호텔 앞에서 미인들의 큰 소란이 발생했다. 패션모델을 지망하는 여성들 수백 명이 몰려들었는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서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어 난장판이 되었다. 경찰과 소방차까지 동원되고 세 미인이 체포되었으며 여섯 미인이 병원으로 실려가고 모델 선발 행사는 취소되었다.

보통 모델 선발 행사에 이렇게 많이 모여들지는 않는데 이번에 주관한 수퍼 모델 타이러 뱅크스 양의 아이디어로 신장 5피드 7인치 이하의 모델을 뽑는다고 하여 키가 작아 한이 맺혔던 미인들이 대거 몰려온 것이다.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조건을 ‘맵시, 솜씨, 마음씨’를 말하는데 할퀴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미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일본 도쿄에서는 기발한 패션쇼가 개최된다. 등장하는 모델은 일본 산업기술 개발회사가 만든 로봇 미인이다. 가장 이상적인 미인을 창출했다고 한다. HRP-4C로 불리는 이 로봇은 95파운드의 날씬한 몸매에 머리카락 키 체구는 일본 여성이고 얼굴은 완벽한 미모를 만들었다. 이 로봇은 깜짝 놀라는 애교도 부리고 미소도 던지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사람과 함께 가사도 돌볼
수 있다. 문제는 옷을 안 입히고 맨몸에 우주복과 비슷한 색깔만 칠했다는데 공개적인 패션쇼에서 윤리위원회에 걸리지 않을지 관심거리라고 한다. 조작해서 만든 미인을 미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은 조화의 미라고 생각된다. 코만 예뻐 미인이 될 수 없고 이목구비(耳目口鼻)의 밸런스로 아름다움이 결정되듯이 얼굴만 가지고 미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교양미, 말씨, 예의, 복장과의 하모니, 생각의 고상함과 행동 등 여러 요소가 잘 어울려 우러나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뉴욕타임스는 동물들도 외모를 보고 기뻐한다는 연구들을 보도하였다. 얼룩말은 단조로운 흑백 무늬인데 수놈 다리에 색동 붕대를 감아 주었더니 암놈들에게 인기가 좋아졌다고 한다.(영국 부리스톨 대학 스위디 교수) 수컷 사슴의 뿔이 싸우다가 부러지면 암컷들이 싫어한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 보다는 상한 뿔 때문에 볼품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캘리포니아 대학 벌리 교수) 겉의 조건, 곧 얼굴이나 체격이나 복장 등으로 아름다움을 말한다면 동물이나 별 다를 것이 없다. 아름다움은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지 겉에서 발산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고사(故事) 한 토막. 해주 감사(監司)가 취임한 첫날 아침, 수종 드는 계집종이 세수 물과 함께 팥가루를 갖다 놓았다. 팥가루는 비누처럼 쓰던 것인데 시골에서 공부만 하다가 출사(出仕)한 감사가 팥가루의 용도를 알 리 없었다. 그는 냄새를 맡아본 뒤에 약을 먹듯이 팥가루를 마셔버렸다. 종이 아뢰었다. “감사 어른, 팥가루는 물에 이겨 얼굴을 씻는 것입니다.” 그러자 감사가 호통을 치더란다. “빤질빤질하게 얼굴만 씻는다고 예뻐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으로 마음을 씻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는 노래가 있었지만 아름다움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 희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 의욕에 차 있는 사람,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며 결코 화장품이나 패션이나 성형수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 아가(雅歌)라는 작은 책이 있는데 솔로몬 왕이 신부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이다. 그는 아름다운 눈을 ‘비들기의 눈’으로 표현하였다. 맑고 순한 눈을 가리킨다. 예쁜 입술을 ‘꿀방울이 떨어지는 입술’로 나타냈다. 달고 영양가 있는 말들이 쏟아지는 입술을 가리킨다.

멋진 코를 ‘레바논의 망대(望臺)’ 같다고 말하였는데 침범자를 감시하는 당당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자기의 애인을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비유하였는데 신비한 베일에 쌓여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표현이 물리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미를 말하고 있다.뮤지컬 ‘남태평양’이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될 때 주연 메리 마틴 양에게 시인 오스카 해머
스타인(오페라의 거장 해머스타인의 손자)의 쪽지가 전달된다. “종은 그대가 울려야 종이 되며 노래는 그대가 불러야 노래가 된다. 사랑도 그대가 나누어야 사랑이 된다. 당신의 노래에 사랑을 실으시오.” 노래 한 곡을 불러도 청중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있어야 그 노래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마틴 양은 이날 대성공을 거두었고 해머스타인의 쪽지는 유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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