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우개’는 차라리 아름답다

2009-03-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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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희 (수필가)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에 나오는 알츠하이머(일명 치매)는 차라리 아름답다. 주인공이 기억만 서서히 사라져 갈 뿐 모습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청순가련하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실제로 치매에 걸린 이들을 보면 어떤가? 물론 20~30대의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노인성 치매환자를 보면 동공이 풀어지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게 비정상적인 티가 난다.

치매(dementia)는 어원이 de(떠나다, 분리되다)와 mind(마음)을 뜻하는 Mens 의 합성어이다. 즉 정신이 떠나버린 질병이란 무서운 말이다. 독일의 의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최초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1906년에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치매를 알츠하이머병이라 부르게 되었다. 치매는 기억력의 점진적인 퇴행을 가져오는 뇌의 이상으로, 뇌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정상적인 단백질인 프리온과 아밀로이드가 독성 단백질로 바뀌어 뇌에 축적됨으로 뇌세포가 광범위하게 파괴되어 발생한다고 한다.


21세기의 가장 무서운 질병인 치매는 주로 65세 이상에 발병하지만 30~40대에 나타나는 조발성(Early Onset) 치매도 전체의 약 10%가 된다고 한다. 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정확한 치료 방법도 없어서 환자의 가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1999 년 도미하기 전 한국에서 많은 가정이 그 부모님들의 치매로 인해 가정 파탄이 나는 것을 보았다. 치매환자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거나 뛰쳐나가서 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항상 돌보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한다. 이웃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우리 며느리가 밥을 안 준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이 것이 치매의 일차적인 진행단계 같았다.

몇 달 후에는 보행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자꾸 대소변을 지려서 집안에 냄새가 난다고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들이 직장에서 돌아와서 목욕시켜드리고 옷을 갈아 입혔으나 증세가 심해져 감에 따라 욕창증세가 나타나니 며느리가 치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방 근처에 얼씬도 않고 그 당시 사십 대 초반의 며느리가 시아버지 병수발을 하느라 얼굴에 노랑꽃이 피어서 다녔다. 어느 날 부턴가 배설물을 손으로 집어서 벽에다 바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라이터로 불을 켜서 이불에 옮겨 붙는 바람에 불까지 날 뻔했다. 그 지경까지 이르자 형제들이 가족회의를 해 병원에다 입원을 시켰으나 병원비 부담으로 많이들 힘들어했었다. 미국에 와서는 밀알 선교단에서 치매환자를 처음 대했다.

이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나도 어떤 때는 잘 치워 놓는다고 하고는 어디에 놓았는지 기억이 안 나서 한참 씩 애를 먹는 경우가 늘어 가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문학이나 신앙으로 우리의 내면을 쉬지 않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원히나, 잠시 잠깐이나 기억이 내 몸에서 떠난다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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