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봄의 축제

2009-03-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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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유수가 지나고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면서 캣츠킬 마운틴으로 유명한 이곳 뉴욕주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는 온갖 봄의 축제가 시작됐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아무리 생활이 어렵더라도 봄을 맞는 설레임은 사람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축제현장으로 유혹한다.

먹고 살기가 바쁘다보니 우리가 쉽게 봄의 축제를 가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더라도 섭섭해 하지는 말자. 우리가 살고 있는 커뮤니티에도 우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야구경기처럼,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꽃의 축제처럼 축제라고 할 수 있는 한인회장 선거가 있지 않은가. 요즘 야구광들은 야구의 월드컵이라 불리우는 WBC경기 응원에 한창이다. 먹고 살기가 힘든 요
사이 한국팀 응원에 미주지역 한인들도 덩달아 엔돌핀이 돈다고 한다. 이 경기중계와 같은 시간, 이곳 뉴욕의 한인사회에도 출마한 한인회장 후보들의 선거 운동이 매우 뜨겁다.


그런데 한인사회 선거 때마다 ‘스포츠만도 못한 지겨운 선거,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유권자들을 자주 접한다. 그것은 왜일까? 이곳 한인사회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거에 염증을 느낀 무 투표자들이 이제는 주류를 형성할 정도로 한인들은 한인회장 선거에 관심이 없다. 내용은 다르지만 지난 미국대선에서 매케인 후보는 무당파를 움직이는 참신성으로 선거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미국민 모두가 축제인 듯 흥겹게 동참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우리의 한인회장 선거와 관련해 한인들은 대체 어떤 의견들을 가지고 있을까?

“투표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러나 역시 뽑을 인물이 없다.” “무관심도 하나의 표현이다. 투표하지 않겠다.” “누가 해도 오십 보, 백보, 별 차이가 없다. 이제까지 보면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더라.” 등등 긍정적인 쪽 보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더 많다. 이번 한인회장 선거는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이슈도 정책도 뚜렷한 후보가 없어 맥 빠진 선거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까, 아니면 정책과 상관없이 후보들의 열의로 올봄 최대의 축제장이 될까, 앞으로 열흘후면 결론이 날 것이다.

선거 때가 되면 으레 금품살포와 인신공격, 상호비방, 심하면 허위사실 유포까지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올해도 곳곳에 포스터와 현수막이 필요이상으로 요란하게 나붙었다. 이런 식으로 한인회장 선거가 우리 사회의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선거관리위원회와 후보들의 엄정한 중립, 선거를 바라보는 한인들의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자세만이 선거는 성공적인 결과로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거당일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한인사회의 수준높은 자긍심이 넘쳐날 때 모름지기 성숙한 한인사회 선거문화의 뿌리가 내려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인회장 선거는 한인사회를 위해 묵묵히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을 우리 커뮤니티의 상징적인 대표로 만들기 위한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약간의 잡음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특히 후보들이 상대에 대해 비방하지 않고 깨끗한 자세로 경선의 장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인사회 선거에서 커다란 수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인회장 선거판은 벌써부터 누구누구 후보는 돈을 엄청 뿌렸다더라, 어느 후보는 또 암암리에 누굴 통해 밥 한 그릇을 사주더라, 아니면 어느 후보에게서 술대접을 받았다더라. 하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

도대체 한인회장이 뭐길 래 이런 루머가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가. 민주주의의 산실인 미국까지 와서 이제는 좀 이런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 이러고도 우리가 선진국인 미국에 와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당선된 후보가 무슨 봉사를 할 수 있는가? 후보나 유권자 모두가 바른 의식을 가질 때 우리 사회의 선거문화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한인사회는 이제 새 봄에 치르는 한인회장 선거로 다시 한 번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아픔을 이겨내고 겨울의 모진 바람과 폭풍, 눈과 비에도 쓰러지지 않고 또 다시 봄을 맞은 한인사회는 아무리 경기가 나빠 힘들더라도 또 다시 새봄의 새싹처럼 파릇파릇 움터 올라 씩씩하고 활기차게 뻗어나갈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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