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짜 바보

2009-03-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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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이 바보야! 너는 바보야!”하면서 님께서 살아온 인생 길을 되돌아보며 후회를 많이 하셨다고 한다. 과연 님께서 스스로 바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바보였을까? 나는 이 흔한 말씀을 앞에 놓고 “세상에서 누가 진짜 바보일까?”하고 되새겨 본다. 진짜 바보는 바보처럼 살지 않은 사람이거나 바보가 되기 싫은 사람이 아닐까?

바보들은 행복하다. 바보들은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바보들은 항상 웃으면서 산다. 바보들은 항상 평화를 손에 쥐고 산다. 부족한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우리는 남에게 바보 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별로 배운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을 하고, 별로 잘난 사람도 아닌데 잘난 척을 하고 산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원망하고 질타하지만 내가 남에게 상처 준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상처 준 일은 생각하지 않고 아내가 남편에게 상처 준 일만을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상처 준 거친 말이나 행동은 생각하지 않고 남편이 상처 준 일만 생각하고 남편을 원망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바보처럼 보이고 바보처럼 산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달관한 사람이고 달인이 되어 행복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되는데 모두 바보가 되기를 싫어한다.


대개 학벌이 좋다거나 공부를 잘 했다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기를 거부한다. 학벌이 좋거나 똑똑하게 보이는 부부간에는 바람 잘 날 없이 알게 모르게 서로가 싫은 소리, 상처 나는 말을 많이 하고, 서로가 지지 않으려는 기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자존심과 성격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만해도 피곤한데 이런 일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똑똑하다거나 이겨보려고만 하는 사람은 스스로 피곤하게 하고 남을 피곤하게 만든다. 남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어 화가 난다면 내가 남에게 준 상처와 고통도 알아야 하는데 똑똑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 자기만을 정당화하며 자기만을 옳다고 세우려 한다.

어미가 자식이 주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어미가 자식에게 주는 고통도 알아야 한다. 인류의 죄악과 고통을 대신 등에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아닌 것처럼 자식들이 수시로 안겨주는 고통을 짊어지고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어미가 아니다. 잘 잘못을 고만두고 어미의 비위를 조금 거슬리게 말을 했다고 일 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계속 다투는 아내들을 나는 가끔씩 본다. 바보가 되어보는 어미로서가 아니라 자기 성격의 우월감과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한 투쟁적인
방법을 아들에게까지 동원한다.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남편에게야 말해서 무엇하리! 나는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위선을 자랑하는 아내들을 잘 알아 그들이 바보처럼 살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연습이 더 필요한지 철저한 바보가 되지를 못하여 분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살고 있다. “성격 좀 부드럽게 고치세요, 아니면 바보 좀 되어 보세요“ 많은 가정이 이런 공통분모를 원하고 있으면서도 시끄럽거나 마음 답답하고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다.

부드러우면 바보가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사람이 사는 시간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그 길이를 한 치 두 치 줄이면서 죽기까지 힘들게 사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가기 싫다고 버티어도 시간은 보이지 않는 작두에 의해서 싹둑싹둑 잘려 간다. 바보가 되자! 그렇게 되지 못하면 짧은 인생은 행복을 모르고 평화를 모르고 억울하게 끝이 난다. 바보들의 행진이 아니면 불행하다. 바보가 되지 못하는 진짜 바보들.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 앞에서 좀 더 바보가 되어야겠다고 바보 같은 다짐을 하면서 억울하게 산 아까운 날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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