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화의 생명력

2009-03-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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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신기한 일이다. 멀고 먼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어떻게 동서양의 생활문화가 교류되었을까. 음식만 하더라도 동서양이 국수를 먹고, 부침질을 한다. 지역에 따라 조미료나 조리 방법이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에 틀림이 없다. 의복이나 가옥에도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의. 식. 주에만 공통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교육을 위하여 들려주는 전래동화에서도 공통성을 본다. 동화를 전래동화와 창작동화로 구분한다. 전래동화는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지은 이야기이다. 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만든 이야기가 되어서 대체로 권선징악적인 내용이다. 동서양이 이야기 내용이 다르지만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어린이들에게 훈화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그들을 생각하게 만들려는 선조들의 지혜이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던 동화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가 계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하기 때문에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고 염려하는 그룹이 있다. 한쪽에서는 지나친 반응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퇴출 목록에 오른 동화책 이름을 훑어보면 앞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 전래동화는 어떤가.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욕심 많고 험한 사람은 벌을 받는 이야기, 나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는 이야기, 계모는 으레 전처 자녀를 학대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데 이것을 지키지 않아서 벌을 받고...등등 철두철미 교훈이 가득 담겼다. 선악 판단이 단순하고 넘칠 정도의 이런 교훈이 어린이들의 사고력을 저하시키지는 않을까.
그러나 전래동화는 그것대로 뜻이 있다. 전래동화를 다루되 독후감을 서로 나누면 좋겠다. 어디가 재미있어요? 왜 재미있어요?, 어린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이야기를 어떻게 고치고 싶어요? 왜 그러고 싶어요? 어떤 느낌을 받았어요?...등등의 질문으로 전래동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면 애써 퇴출까지 하지 않고 뜻있게 소개할 수 있겠다.

더 큰 문제는 서양 전래동화에는 익숙한데 한국 전래동화를 모른다는 점이다. ‘헨젤과 그레텔’ ‘빨간 망토’는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나무꾼과 선녀’ ‘흥부와 놀부’를 모른다면 생각할 문제이다. 동화는 어린이들을 성장케 하는 비타민이다. 동서양의 영양분을 골고루 섞어서 섭취할 때 세계적인 사고력을 가진 인물로 클 수 있다. 여기서 자라는 어린이들에겐 그 토양이 풍요롭다. 그런데 한 쪽 문을 닫으면 아까운 일이다.
여기에 공헌할 수 있는 어른들의 일감이 있다. 여기 토양에 맞는 창작동화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요즈음 2세들의 창작동화가 몇 편 소개되어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다만 영어로 쓰인 것이 유감이지만, 우리들의 귀한 재산에 틀림없다. 어린이들에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동화를 읽히고 싶다.

‘첫 번째 어린이’
두 번째로 우주 여행을 떠난 컬럼비아호에 철이가 타고있는 것을 아십니까? “아니, 이게 웬 어린이야!” 우주 비행사인 조와 리처드는 소리를 쳤습니다. “아저씨들 미안합니다. 저는 아저씨들과 함께 우주 여행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까지 왔지?” “이 옷을 보세요. 제가 이것을 입으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지요” 철이가 들고 있던 옷을 입었습니다. “하하하...과연 보이질 않는군!” “그 옷을 입고 우리를 따라서 컬럼비아호에 들어왔군” “리처드, 어떻게 할까요?” “조, 지금은 지상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철이도 우리와 같이 우주 여행을 계속하도록 합시다” 철이는 컬럼비아호 안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떠서 다니는 것이 재
미있었습니다.

또 멀리, 가까이 보이는 별들을 내다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저씨,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어디 있어요?” “저 아래 초록색 구슬같이 보이는 것이 있지?” “아, 저 아름다운 별이 지구예요?” 철이는 별안간 지구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저씨, 저도 친구들한테
통신을 보낼 수 있어요?” “좋은 생각이다” 철이는 통신기 앞에 앉았습니다. “여러 친구들, 나는 지금 컬럼비아호에 타고 있어. 여기서 보는 지구는 마치 초록색 구슬같이 아름다워. 십년 후, 여러 친구들이 우주여행을 떠날 때, 내가 우주 비행사가 되어서 안내를 할 생각이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이것이 철이의 맨 첫 번 우주 통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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