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럼 독 주지사’

2009-03-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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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 의사

2월 24일 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이 전국의 TV로 생중계 되었다. 오바마의 연설은 가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정치 각료들로 가득히 메워진 의회는 뜨거운 열기로 닳아 올랐다.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의자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연거푸 하는 통에 옆에 앉아 있던 부통령 조 바이든이 따라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연설도중 “투자 은행의 CEO들이 납세자들의 돈으로 두둑한 연봉을 챙기고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사라지는 때는 이제 지나갔다”고 말하는 순간,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내가 날려버린 채권도 푼돈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호화파티의 고급와인 한 병 값은 되지 않았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곧바로 대통령에 맞대응하는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바비 진달의 연설이 전국의 TV로 생중계 되었다. 그는 남북전쟁 이후 최초의 유색인종으로 2008년 루이지애나 주지사로 당선된 올해 37세의 인디언 계 이민 1세의 아들이다. 특히 그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돈의 경기부양정책에 대해 치명적인 타박상을 입히기 위해 공화당의 대표 연설자로 선정된 것이다.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바비 진달의 연설은 강한 흡인력으로 청중을 끌어들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오바마 연설에 대적하지 못했다. 바비 진달의 연설은 지루하고 설득력이 없었다.
그는 연설에서 태어난 성장 배경을 휴먼 드라마로 극대화시키려 했다.
그의 부모가 남아시아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어머니는 4개월 반의 임신 중이었다.


아버지는 구직광고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으나 아내의 출산 비를 지출할 수 없어서 할부금으로 나누어 지불했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식품점에 들리면 수많은 물건들이 가득히 채워져 있는 선반을 가리키며 그의 아버지는 “아메리칸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American can
do anything)”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아메리칸 꿈을 심어준 아버지의 말을 반복하면서 연설의 끝을 맺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8개 부문 수상을 휩쓴 ‘슬럼 독 백만장자’ 영화에서 주인공인 빈민가
출신인 18살의 소년, 자말 말리크가 2천만 루피가 걸린 인도의 퀴즈 쇼에 출연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것을 그린 역전의 삶과 같은 벅찬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했을 대피작전을 진두 지휘하는 지도력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루이지애나는 반은 물에 잠겨있고 반은 공직자의 부패로 인해 고소장이 쌓여있는 도시라고 혹평하면서 부패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집도했다.바비 진달은 하버드 의과대학 입학 허가서를 받고도 정치가가 되고 싶은 꿈 때문에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특수고등학교를 거친 후 아이비리그 의과대학으로 밀어붙이며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아이들도 부모의 선택을 그냥 따라주었다. 소수민족인 이민자들이 살아남는 생존전략은 오직 전문직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느슨하게 고삐를 늦추고 아이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지 해봐,
너는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하고 쿨(Cool) 하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인사회가 2세, 3세로 뻗어나가면서 언젠가는 아시안 계 슬럼 독 대통령도 나오지 않겠는가? 인디언 계 이민 1세의 아들, 슬럼 독 주지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바비 진달은 아시안 유색인종의 첫 대통령 감으로도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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