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도 멀리하는 정신장애 피의자들

2009-03-06 (금)
크게 작게
몇 해전에 50대의 한 한인 주부가 이웃과 말다툼을 하다가 쇠꼬챙이로 위협했다해서 경찰에 잡혀온 적이 있었다. 지문조회 결과 이 부인은 꼭 같은 혐의로 플로리다에서도 입건된 적이 있었지만 재판에 나가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법원에서는 500달러의 보석금 명령을 하게 되었고 이 보석금이 지불될 때까지 형무소에 갇혀서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부인은 휴대전화만 가지고 있는 남편이나 다른 이웃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전혀 없어서 바깥 세상으로 연락할 길이 없었다.

사건을 배정 받은 국선 변호사는 가족조차 연락을 하지 않는 이 부인을 불쌍히 여겨 기록에 있는 주소로 몸소 직접 찾아가서 그의 아들이라는 청년을 만나 자초지종을 알려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아들은 그 다음 재판 날 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별것 아닌 미미한 사건으로 이미 두어 달이나 형무소에서 보내고 있는 여인에게 검찰조차 더 이상의 소추를 포기하고 기소유예혐의로 이 여인을 풀어주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난 이듬해에 이 부인은 또 꼭 같은 혐의로 체포되어 들어왔다. 이번에 이 여인은 사건 내용을 들어 보려는 변호사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어서 정신 상태를 의심한 변호사가 정신감정을 의뢰하게 되었다.

감정결과 과연 이 여인은 심각한 정신장애자였었고 그 가족인 남편과 아들은 여인이 형무소에 갇혀 있는 상황을 오히려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고 이 여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딱한 가족이었다.
또 작년 초에는 20대 후반의 한 여인이 절도혐의로 체포되어 들어 왔다. 밤중에 남의 가게에 숨어 있다가 계산기를 열고 돈을 훔치는 것이 고스란히 VDO에 촬영되어 있어 중범 혐의로 입건되었고 많은 액수의 보석금도 책정되어 형무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중범혐의의 절도 사건이니 만큼 검찰로서도 사건 수사를 해야 하였기에 재판은 수개월이나 걸리고 있었다. 검찰이 중범혐의로 배심회의에 보내 기소하려는 단계에서 변호사가 이 여인의 횡설수설하는 답변이 정신장애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감정을 의뢰했다.


정신과 의사들의 감정면담이 있기까지 정신병원에서 수개월을 보냈고 거의 반년 이상이나 지나서 이 여인의 정신상태가 재판을 받을 상태가 아니라는 감정결과에 따라 재판은 끝이 나서 풀려났다. 남편까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이 여인이 거의 8개월이나 형무소와 병원에서 지나는 동안 그를 면회 온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지난주에 또 체포되어 들어 왔다. 경찰에 체포되면 24 시간 이내에 법원으로 송치되어 보석 재판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이 여인은 중앙구치소에서 법원에 송치되지 못하고 일주일을 갇혀 있는 중이었다.

이 여인이 지문조회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앙구치소로서는 지문조회결과를 서류에 첨부해서 법원에 송치해야 함으로 지문조회를 거절하고 있는 이 여인을 송치할 방법이 없어 지문조회에 응할 때까지 구치소에 무작정 가두어 두고 있는 중이었다. 변호사들도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중에 마침 내가 이 여인을 기억하고 작년에 정신장애 판정으로 풀려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자 비로소 정신장애 쪽으로 의심을 하게 되어 경찰에 정신 감정을 하도록 주선하게 되었고 경찰은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법원에는 많은 정신장애 피의자들이 입건되어 오기 마련이고 그 중에는 한국인들이 관련된 사건도 그 동안 많이 있었지만 거의 전부가 가족들의 보호로 돌아가거나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런가하면 일반적으로 정신장애에 대해 한인들은 상당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족이 있으면 치료방법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쉬쉬하며 감추려고 급급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가족들조차 돌보지 않는 위의 두 여인의 경우 결국에는 큰 일을 저지르는 비극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어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박중돈 <법정통역>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