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길한 예견

2009-03-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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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된 지 10년 정도 된 모범수로 있는 재소자 B를 만나러 교도소 대기실에서 수속을 하고 있는데 이에 앞서 수속을 하면서 대기 중인 3명의 동양인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는 모르지만 한인타운의 방황하는 청소년 무리중의 하나로 보여 마음이 별안간 찜찜했다.
분명 친구를 면회 왔을 텐데, 희희덕 거리며 면회수속을 하는 태도가 면회를 받아야하는 처지에 있는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연민의 마음을 볼 수가 없는 것 같아 나는 괜히 심사가 뒤틀렸다.

수속을 마치고 면회실에 들어가 밝은 얼굴로 들어오는 B를 반갑게 맞으며 우리는 사각형 테이블을 놓고 마주앉았다. 그런데 우리가 앉은 곳에서 서 너 테이블을 건너 그 세 친구가 만나러온 재소자가 들어와 앉았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시선이 가자 B는 “쟤, 새로 들어온 한국 아이에요” 하며 설명을 하는데 17살 때 2년 전의 사건으로 들어오게 된 내가 아는 아이들 중의 한명이었다. 이미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을 예견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영 좋질 않았다. 이유는 바로 그 아이와 어울려 다니던 아이 중 한 아이는 아직도 내 마음을 ‘찡’하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
문이다. 그도 역시 같은 케이스로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그 아이를 만났을 때는 13살 어린 소년이었다. 아주 잘생기고 착하게 생긴 아이였다. 한국에서 갓 온 그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해 미국으로 올 계획으로 여행비자로 오다가 아빠가 그만 공항에서 걸려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그 아이의 삶의 방황과 혼란의 시작이 될 줄은 그 엄마도, 아이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아빠 없이 시작된 낯설고 물 설은 미국 땅에서 엄마와의 어려운 이민의 삶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삶이 마치 꼬리 잃은 연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다 땅에 쳐박히고 나둥그러질 것을 예견하듯 그는 학교도 가정도 적응하지 못하는 시간들 속에서 몸부림을 쳤고 나는 그를 도우려고 무진장 애를 써보았다. 처음에는 어리고 순진한 면이 있어서 그런대로 상담에 잘 응하고 따라오는 듯 하더니 그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의 틈바귀를 마치 더러운 바퀴벌레처럼 비집고 들어오는 어두운 유혹의 손길은 너무나 강해서 그는 결국 견디질 못했다.


나는 그를 찾아다니고 잡으러 다니고 그는 우리의 손길을 피해 달아나며 그렇게 숨바꼭질을 하듯 그런 인연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마치 때만 되면 보고하듯 그의 어머니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내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나는 아들도 엄마입장도 백번이해가 되어 누구에게도 무어라 할 수 없지만 그 엄마에게 수없이 이야기했고 하소연을 했다. “엄마가 내게 협조하지 않고 단호한 결정을 안 내리면 그 아이의 종말은 교도소입니다.”라고 ..나는 절규하듯이 그렇게 수없이 이야기를 했지만 그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를 내 앞에 한 번도 데려오지 못했다.

엄마 자신도 아이가 겪는 처지와 환경의 고통 앞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힘도 쓸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밖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 엄마에게 나는 얼마나 많이 화가 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아이의 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엄마에게 예견한대로 아이의 한 해, 한 해가 망가져가
는 것을 보는 것은 내게 또 다른 고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를 면회해야 하는 자리에 오고야 만 것이다. 서너 테이블 떨어진 곳에 면회를 받고 있는 그 재소자가 내가 붙잡으러 다니던 그 아이의 과거의 시간 속에 함께했던 아이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 나를 몹시 괴롭고 슬프게 하는 면회였다. 그리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지금도 내 주위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예견으로 부모에게 소리치고 절규해야 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있고 그들 앞에는 무기력한 부모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숙 유스&패밀리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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