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한인가정은 모래성인가

2009-03-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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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경제위기로 매우 위축돼 있는 가운데 그동안 잠재해 있던 한인가정의 문제들이 표면으로 노출되기 시작해 이민 와서 지금까지 애쓰고 쌓아올린 커뮤니티가 모래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금융위기가 장기화하면서 한인사회의 가정 붕괴도 이와 함께 가속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한인가정의 참극들은 이제 한인사회가 올 데 까지 온 게 아니냐는 비탄의 소리가 나오게 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의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인들의 본격적인 미국 이민역사 30년 동안 이룬 것은 무엇인가? 이제까지 한인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땀 흘리고 수고하고 고생하며 살았는가? 한인들의 노력과 근면, 성실함은 어느 민족 보다 큰 결실을 가져왔기에 한인사회는 경제력이나 자녀교육면에서 성공한 이민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퀸즈 베이사이드의 두 한인가정에서 일어난 대형 사건은 한인가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두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자 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것이 한인가정의 현실이라며 이런 사건은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더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현재 보이는 한인가정의 모습이 모두 거품이라는 말인가!


실제로 이번에 경제위기가 오자 한인가정의 경제가 거의 반 토막이 되면서 그동안 벌어서 장만한 부동산이 무너지고 모든 것을 다 바쳐 길러낸 2세들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결혼 후에도 이혼이네, 뭐네 하며 균열상을 보이는 집이 많다. 표면에 드러나는 돈벌이와 자녀의 명문학교 입학에만 열을 올리며 살아오다 보니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와서 벌어놓은 재산도 날라가고 주식은 토막나고 자식들도 말썽이고 결국 30년 이민생활을 허송세월 보내고 환갑나이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지금도 겉 치례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진 것은 10개 밖에 안 되는데 10개 이상으로 보이려는 생활이나 태도로 필요 이상의 거품에 둘러쌓인 생활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알맹이가 없는 생활이다. 가진 것이 없고 마음이 비어 표면상 치장으로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것일까. 원래 속빈 강정일수록 겉치레에 요란하다. 한인들의 대다수는 주일이면 이민교회에 나가 예배하고 친교한다. 이민사회에서의 교회는 한국인들끼리 모여야 마음이 편하고 향수를 달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들 찾는다. 하지만 개중에는 상처들을 안고 나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신앙을 토대로 하는 교회에서조차 모든 진실은 뒤로 하고 겉으로만 믿음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위로와 평안을 얻기 위해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마음 문 한번 속 시원히 열어보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우리 한인이민교회의 현실이다. 한인 교회 상도 실제로 대다수의 교회들이 경제력이 없고 상처가 있는 사람보다는 돈 많은 교인들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거품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한인가정은 얼마나 될까?

덮어놓고 돈만 벌기 위해 살아왔던 이민의 기간을 무엇으로 채운단 말인가. 지난번 일어났던 두 한인가정의 비극은 경제적인 문제가 없어도, 아무리 금슬이 좋아도 경제적인 위기만으로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 이것은 어떤 여건이라도 삶의 자세, 가정의 기초가 든실하지 못한 부부는 언제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즉 내실이 튼튼하지 않은 가정, 거품이 있는 가정, 알맹이가 없는 가정은 결국 붕괴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결혼생활에서 헤어지는 주요 이유가 주로 성격차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부부 갈등이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부모들은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고생을 감수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인내가 바닥이 난 지금은 경제적 능력상실이 가정해체, 죽음으로 직결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불황속에서 가정을 지키는 부부들이 오히려 ‘어리석다’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을까? 거품으로 둘러쌓인 한인가정의 내일이 걱정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인들은 이제 잃어버린 세월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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