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불황증후군 경계하자

2009-02-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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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 (취재 1부 부장대우)

“이민 와 10년간 종업원으로 일하다 어렵사리 델리가게 하나 장만했는데 장사가 안돼 렌트 내기도 버겁습니다. 이제 ‘사장님’ 소리 듣고 살게 됐다 싶어 뿌듯했는데 2년도 되지 않아 이게 웬 날벼락인지 모르겠네요. 앞이 캄캄합니다.”

“갖고 있던 통장 싹싹 털고 은행융자 받아 타주의 콘도에 투자를 했는데 집값이 반토막 나는 바람에 깡통주택이 돼 버렸어요. 은퇴자금을 마련할 요량이었는데 전재산을 탕진하고 부채만 떠 앉게 된 꼴이 됐으니 죽을 지경입니다.”


요즘은 누굴 만나도 반갑기 보다는 불경기 여파에 따른 신세타령과 하소연을 자주 듣다보니 덩달아 우울해지기 십상이다.1930년대 대공황이래 최악이라는 불황을 맞아 비즈니스는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고, 여기에 고용불안 확산까지 더해지면서 한인사회 전체가 불황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불황 증후군 현상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월스트릿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본격 옮겨 붙으면서 규모와 업종에 상관없이 매출이 급감하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상인들은 그저 한숨만 푹푹 쉬고 있다. 부유층까지 몸을 움츠리고 지갑을 닫으면서 불황의 무풍지대로 꼽혀오던 고급 백화점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가격하락과 극심한 거래 침체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수천만 달
러를 들여 지어 놓은 아파트의 공실률이 50%를 넘고 있는가 하면 예전 같으면 불티가 났을 노던블러바드 한인 신축상가가 분양이 제대로 진행이 안 돼 개발업체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때문에 모기지 상환까지 힘들어지면서 차압소송 절차를 밟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연방정부가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수천억달러의 경기부양안 시행에 들어갔고 갖가지 구제책을 내놓고 있다지만 언제 불길이 잡힐 지는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도 서로 달라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런 탓일까. 최근들어 스트레스나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는 한인들이 급증하고 있는가 하면 경제적 문제로 불화를 겪는 한인가정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골 깊은 불황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여러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현상을 그대로 방치하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상황은 어렵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좀 더 냉정해야져 할 때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불황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불황의 파고를 넘어 설 실질적인 생존전략 모색에 우리 모두 머리를 함께 맞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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