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거짓말도 용감하게 하는 사람들

2009-0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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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에 대한 염원이 유럽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15세기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 지방 보헤미아에 학자요 설교가인 존 허스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한때 천주교에서 발행한 죄 용서의 티켓인 면죄부를 구입했던 적이 있었다. 후에 말씀을 연구하면서 면죄부에 대한 잘못을 깨닫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그는 모든 공직에서 파문되어 시골로 쫓겨난다. 후에 교황청은 그가 이단 사상을 철회하면 모든 직위를 회복해 주겠다며 회유하곤 했었다.

허스는 끝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주장하며 거듭되는 교황청의 요청을 거절했다. 수많은 공청회와 고문을 거치면서 인내가 다했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고 장작더미 위의 화형으로 순교하는 길을 택했다.


그에게는 한때 자신이 깊이 생각지 않고 샀던 면죄부에 대한 후회가 막심했던 것이다. 자신의 안일을 택했다면 시골에서 혼자 조용히 회개하며 일생을 마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끝내는 장작더미 위에서 온몸이 타는 고통 중에 이렇게 기도했다. “주 예수님, 당신을 위하여 이처럼 잔인한 죽음을 아무런 불평 없이 감당합니다. 부디 나의 적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 진실하게 살기위해 용감하게 죽었던 위대한 순교자의 모습이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 종교와 정치를 초월해 일어나고 있다. 그 분의 많은 업적 중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이 있다면 불의에 대항할 줄 아는 용기였다. 대부분 교회의 지도자들이 몸 사리며 눈치보고 있을 때 서슬 퍼런 쿠데타 군부를 향해 바른 소리를 내었던 분이다. 한 사람의 신앙 용기 때문에 80년대 후반 많은 젊은이들은 교회보다 천주교에 매력을 느껴 이동했던 현상이 나타났었다. 바른 것을 바르다 말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신앙을 살아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인간의 악한 근성을 강하게 경험할 때가 있었다. 교회에는 왜 그렇게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거짓말을 해도 아주 당돌하고 용감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교회는 습관적으로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비판 없이 용납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이들도 당연히 사랑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을 바르게 징계하고 지도할 수 있는 텃밭이 되어 있지 않다. 목회자부터 거짓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은혜로 하자며 그냥 넘어가는 것을 신앙의 덕(?)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버린다. 권위를 내세우며 강단의 파워까지 동원하면 쉽게 대항할 사람들이 많지 않다.

지도자들의 철저한 자기 회개와 반성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개혁 연대가 필요하다. 문제는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은 많으나 개혁에 앞장서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일 존 허스 목사가 시골에 엎드려 책만 저술하다 일생을 마쳤다면 종교개혁이 얼마나 늦추어졌을까를 생각해 보라.

우리 시대의 교회를 보면, 제2, 제3의 존 허스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용감하게 거짓으로 아멘을 외치는 사람 대신 불의를 향해 죽어라고 진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때가 오면 사람들에게 보이려 거짓말을 늘어놓는 바리새적인 기도는 힘을 잃을 것이며, 의를 나타내기 위해 억지 가면을 쓴 자들은 참 회개로 흐느끼는 세리의 기도에 기죽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 그리고 진리를 좇아 믿음의 길을 걸어간 자들은 평화의 성벽을 주님과 함께 거닐게 되리라.

손경호
(보스톤 성령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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