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코코펠리 보살

2009-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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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서부 애리조나 사막의 한 모퉁이, 눈에 잡히는 산과 바위와 땅 그리고 사람들마저도, 온통 진홍빛으로 물든 도시. 세도나는 사막의 요염한 보석이다.

이 앙증스런 도시의 주변에는 잘 알려진 대로 강력한 기(에너지)가 분출되는 여러 개의 볼텍스가 있어, 무수한 구도자들이 그야말로 나 아닌 ‘참 나’를 찾아, 그 ‘답 없는 답’을 찾아 ‘길 없는 길’을 떠나, 자리를 틀고 수행하는 세계적인 명상의 도시이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 은거하여 유유자적하는 곳이기도 하나, 그들의 농축된 예술적 영감과 에너지가 창발(創發)의 한 순간을 탐탐히 엿보는 ‘한가한 긴장’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도나는 고대로부터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영혼의 성역이다. 따라서 이 도시는 눈 닿는 곳이 예술이며 발 닿는 곳이 바로 신화이고, 손만 닿아도 수많은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를 들고나는 길을 따르다 보면 낯익은 조형물인 한국의 제주도를 상징하는 돌하르방과 세도나의 상징물인 코코펠리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이곳에 사는 한인들이 세운 돌하르방은 제주도 방언으로 돌로 만든 할아버지라는 뜻이며,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수호하여 준다고 믿는 수호 석신(石神)이다.

그리고 코코펠리는 이 지역 원주민인 푸에블로 인디언들에게는 수천년 전부터 신성시 되어온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인물이다.

피리를 연주하는 곱사등이 코코펠리의 형상은 약 3,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벽화에 음각된 모습으로 발견되었으며, 그밖에 인디언들의 조각, 벽화, 회화, 도자기 등 많은 예술적 표현물에 등장한다.

코코펠리는 그의 상징이기도 한 곱사 등의 혹 속에 씨앗과 노래를 가득 담고 마을과 마을을 건너 정처 없이 떠돌며 각종 세상사를 전하는 메신저요, 구수한 이야기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방랑자다. 또한 그는 피리소리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불러오는 정령이며, 비를 오게 해 가을의 풍작을 가져오게 하는 음악의 신,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피리를 불며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밤새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나누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병자를 치유하는 치료사로서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자로서 그들의 꿈과 희망이며, 때로는 부족들의 종교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장으로서 경외의 대상인 성자로서의 위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어쩌면 인디언들의 성자인 코코펠리는 보리살타(bodhisattva)의 화현인지도 모른다.

‘보살’로 통칭되는 보리살타는 북방 불교권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상징되는 인격이다.

보살은 시공을 건너 고통 받는 모든 존재들이 마음의 평온을 누리게 하고자, ‘나’를 버린 영원한 ‘무아’의 실천자로서 무한한 자비 행(行)의 대 원력을 서원한 분이다. 더욱이 모든 생명 있는 무리들이 그리되게 추구하고 성취하고자하는 궁극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수상하고 혹독한 엄동을 사는 지구마을 사람들에게도 머지않아 봄은, 봄의 정령인 코코펠리 보살은 틀림없이 생명의 피리소리를 앞세우고 그 숭엄한 몸을 나투실 것이다. 보살의 자비행은 ‘완성될 수 없는 완성’이기에 영원히 ‘현재 진행형’이므로.

박재욱
(LA 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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