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9-02-16 (월)
크게 작게
김윤태 (시인 )

한국에서 어린이들은 자랄 때 연을 날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멀어져 가는 땅을 보며 연이 하늘로 자꾸 오르면 땅에서 멀어져 가는 연을 보며 연을 날라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좋아했다. 연은 꿈이라고 했다. 이룩하지 못한 꿈도 연으로 대신하여 하늘높이 날리고, 이룩하고 싶은 꿈도 하늘높이 날린다. 연 날리기의 맛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미국이민은 내가 꿈을 안고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발을 디딘 후, 1백 여 명 정도의 한국인이 살고 있던 뉴욕으로 건너온 것이 시작이다. 뉴욕의 공포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이애미 따스한 곳으로 내려간 때가 벌써 사십 년이 넘었다. 그 후 아틀란타를 거쳐 뉴욕으로 다시 이사를 온 것도 거의 30년이 다 되었다. 나는 가는 곳마다 연을 날리면서 산 셈이었고 그 연에는 언제나 나의 꿈을 실었는지라 꿈을 날리면서 산 셈이었다. 지금도 나는 꿈을 연으로 날리면서 산다.


커네티컷의 뉴 캐넌(new canaan)이란 작은 동네와 얼굴이 맞닿은 웨스트 체스트 카운티의 제일 작은 마을 비스타(vista)에다 자리를 잡고 나서도 인적 없는 산 속에서 꿈만은 잊지 않고 꿈을 날리면서 18년을 이곳에서 살고 있다. 가는 곳마다 꿈이 있었고 해마다 꿈이 있었다. 외지라서 그랬을까? 외로워서 그랬을까? 꿈이란 누구에게나 맛이 있는 반찬이다. 한 가지 반찬으로 만족하는 꿈도 있지만 꿈을 휘젓다보면 여러 가지 맛있는 반찬의 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은 입맛이 없다. 반찬이 없거나 반찬의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 마음이 아프니 입맛을 잃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많은 이민자들이 이 땅에서 입맛을 잃었고 날이 갈수록 입맛을 잃고 있다. 깨어났기 때문일까? 이 땅의 꿈은 내 것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많은 것이 서툴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많은 것이 낯설다. 어떤 사람은 견디다 못해 연을 거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문명이야 동서양이 거의 비슷하지만 문화는 전혀 다르다. 먹는 음식문화도 다르고 언어의 문화도 다 다르다. 건강한 사람은 반찬이 없어도 잘 먹는다. 우리도 건강으로 말하자면 어느 민족보다도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여겨 왔는데 입맛이 없다. 부대끼며 살다보니 마음에도 어느새 성인병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 꿈은 많았는데 그 중에 한 가지 꿈도 현실로 이루지 못한 사람은 온 몸이 노곤하고 온 마음이 피곤하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이루기 쉬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은 가족의 화음이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끈기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꿈은 좋은 것이고 꿈은 미래를 세우는 깃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꿈같은 아름다운 한 곡의 음악은 자기의 내용을 들려주려고 깃발 같은 선율이 오선지 위를 달리면서 연주자들을 종으로 부린다. 꿈이 우리를 항상 종으로 부리고 있다. 그러나 꿈같은 것들이란, 끝이 나면 악보를 접은 후 연주자도 가고 청중도 적막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꿈보다는 꿈을 버리고 차라리 현실에 집착하며 오늘도 우리는 비비며 사는 지도 모른다.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갑자기 경제가 부유해진 한국에서는 꿈을 연으로 들고 이민한 우리를 보고 측은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불쌍하다고 까지 한다. 아직도 우리는 이 땅의 높은 하늘에다 꿈을 연으로만 날리고 있기 때문일까? 이사를 몇 번씩이나 옮겨 다니면서도 나도 아직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