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제 강점기 한국영화

2009-02-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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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 홈아트 갤러리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의 반대방향으로 여행을 한 것 같다.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마련해준 코리아 소사이어티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감사를 드린다. 80년 전으로 되돌아가 도착한 곳은 경성(서울)역이었다. 스팀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칙칙폭폭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장면, 숭례문을 배경으로 전차가 달리는 모습, 경복궁, 뚝섬, 종로경찰서, 서울뿐만이 아니다. 거친 앞바다, 금강산, 그리운 고국산천을 세트 촬영한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서울거리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감격스러웠다.

일제 강점기 한국영화를 최근 중국 정영 자료관에서 발굴한 것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한 7편의 작품 중 6편을 보았다. 첫날인 1월28일 저녁에는 ‘반도의 봄’과 ‘조선 해협’이라는 주제의 영화를 보았다.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1941년 12월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 태평양 전쟁포문을 열 때이며, 1943년은 전쟁이 극에 달할 정도로 치열할 때다. 그러므로 일본정부 검열 또한 한층 더 수위를 높였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 두 편의 영화 속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조선해협’에서 여주인공(문예봉)이 봉제공장에서 과로로 쓰러지는 장면 하나만 봐도 그 시점에서는 군수품 조달에 전국민이 혹사당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전체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언어 또한 한국말은 사라지고 일본어로만 나왔다. 1943년에 제작된 박기체 감독의 ‘조선해협’은 전쟁이 가장 치열할 때였다.

클린턴 대통령시절, 난생처음 북한영화를 퀸즈 뮤지엄에서 볼 수 있었다. 월북배우 박철과 문예봉, 늙은 할아버지 역으로 박철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북한영화 ‘도라지꽃’에서 문예봉은 출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1930년대 최고 인기인 한국의 프리마돈나 문예봉, 그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얼마나 대단한 미녀였을까? 또 연기는 어떠했을까?

박철과 문예봉. 그들 콤비가 사랑싸움으로 진주공연에서 두 주인공이 사라져 버리자 극단 무대 뒤에서 청소하던 청년 김승호가 대리 역을 했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 아무튼 영화판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문예봉. 나는 이번 기회에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흥미 있었다. 그러나 옆 좌석 아내가 보는 눈은 반대였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총칼과 일장기를 앞세우고 고지를 향하여 돌격하는 전쟁놀이. 한국청년이 일본군복을 입고 전투 속에서 쓰러지며 마지막 토하는 고함 “일본천황 만세”, 서울거리가 온통 일장기 물결 속에 흘러나오는 일본군가.

지금도 전쟁 속에서 죄 없이 죽어 가는 어린아이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같은 땅에서 몇 천 년을 고양이와 쥐 모양 앙숙같이 싸우는 그들을 볼 때 한국과 일본도 영원히 기름과 물처럼 융합할 수 없는 것일까. 아직도 우리에게 일본이란 나라는 먼 나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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