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간호장교 신 대위

2009-0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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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춘 기 (골동품 복원가)

지난해 가을 독감을 얕보고 무리하게 복원작업을 강행하다 급기야 급성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수술→중환자실→회복실→퇴원이라는 풀 코스를 거쳐 20일만에 세상에 나왔다. 나는 병원생활을 하면서 줄곧 간호장교 신대위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겼다. 1953년 5월, 부산 광복군에 소재하고 있는 제5 육군병원에는 연일 앰뷸런스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병실은 이미 포화상태, 복도도 만원, 부상병은 건물 뒷마당에 즐비하게 누워있다. 어린 간호장교 소위(여고생)들이 엉엉 울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이들의 총 지휘자가 바로 간호장교 신대위이다. 신대위의 직책은 장교병동 담당 주임간호장교로 40대의 아줌마형이다. 강원도 백마고지에서 부상을 당하여 제5육군병원 장교병동에 입원중인 육군중위 본인은 비교적 경상의 몸으로 자진하여 신대위를 보좌하고 있다.

“거기 이소위 붕대나 압박대 빨리 가져와 빨리” 야전병원에서 처치한 지혈대가 느슨해져 피가 흐르는 부상병을 부둥켜안고 신대위가 소리 지른다.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신대위님“ 이소위는 떨고 있다. 신대위가 이소위 다리를 주시한다. 스타킹을 신고 있으면 달려들어 벗길 작정인 모양이다. 병아리 가난뱅이 간호장교 소위의 허벅지에 스타킹이 있을 리 없다. 당시 스타킹은 미군PX나 일본밀수품이 암거래 될 정도로 귀하디 귀한 몸이다.“이소위 치마라도 찢어” 차라리 지옥이어라. 이소위가 “엄마”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소년병 육군 이등병은 김대위 품안에서 죽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대위가 이등병 시체를 부둥켜안고 절규하든 이 말을 “주님 너무나 너무나 많은 한국남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원 앞 도로에서는 데모행렬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휴전 결사반대...북진통일> 휴전 임박설이 최전선까지 알려지면서 휴전까지만 죽지 않으면 살 수 있다고 초단위로 휴전소식에 목을 매던 최전선의 용사들! 그들이 바로 여기 맨땅에서 죽어가고 신음하는 부상병들이 아니었던가!


정치논리와 생존논리가 교차하는 역사의 현장을 나는 독감병실에서 되씹어 본다.간호장교 신 대위의 절규는 만고의 진리다. 전쟁이 일어나면 젊은 남자가 끌려가고 젊은 남자가 죽어간다. 그 중에서도 잘나고 씩씩하고 멋있는 젊은 사나이가 제일 먼저 죽어가고 못난이 순으로 뒤따른다. 반면 전쟁을 충동질하는 자들이 있다. 바로 전쟁모리배와 백군들이 그들이다.
간장 담가 군에 납품하라고 국가에서 준 콩은 암시장에 다 팔아먹고 대신 바닷물에 먹물 풀어 간장이라고 군에 납품한(해수간장 사건) 전쟁모리배들!전쟁모리배 보다 어떤 면에서 더 악질이 있다. 바로 빽군들이다. 군인이라면서 빽만 믿고 전방을 외면하고 후방만을 빙빙 돌면서 군수품 훔치고 돌아가는 군의 흡혈귀들! 장개석 정부가 모택동군에 패해 대만에 쫓겨간 주원인이 바로 빽군 때문이었다.

조국 한반도의 상공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바로 1년 전 만해도 연인원 1백만 명이 남북을 오고가던 3.8선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주동포는 숨을 죽이고 주시하고 있다. 슬기로운 평화공존의 해법을 기대한다. 제2의 6.25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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