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렉스와 ‘사반트 신드롬’

2009-0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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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번역 출간된 책 ‘렉스’는 시각장애와 자폐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렉스의 이야기를 어머니가 쓴 책입니다. 렉스의 어머니 캐더린은 렉스를 낳은 날부터 날마다 “어째서 나와 이 어리고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큰 고통을 주셨습니까”라고 절규했습니다. 비오는 어느 날 차 안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들려준 베토벤의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를 보고 그녀는 렉스가 천부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 맞는 생일에 렉스는 이혼한 아버지로부터 전자피아노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것이 렉스와 어머니의 삶을 일순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4세 때 렉스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자 놀랍게도 조화로운 선율들이 울려 퍼졌고 렉스는 자기만의 세상을 음악의 신비로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를 전혀 배운 적도 없는 아이가 유명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그대로 받아 연주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풍의 곡으로 재해석하여 연주하는 능력까지 보이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장애인 가운데 어떤 부분에서는 보통사람을 훨씬 능가하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을 ‘사반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사반트 신드롬의 경우 절반 이상은 자폐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수점 이하 수십 자리까지 암산해내는 능력이나 수십 년 전의 특정한 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 2~3초 안에 맞출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이 사반트 신드롬입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조이토요학교에 나오는 학생 가운데 자폐장애를 가진 토마스라고 하는 친구 역시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합니다. 길을 떠나기 전 가야 할 곳의 약도를 미리 읽어준 다음 차에 태우고 가면 토마스는 그야말로 일급 GPS가 됩니다. 다음 길이 어디인지 좌회전을 할지, 우회전을 할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곤 합니다.

사반트 신드롬을 가진 장애인이 의외로 많아서 많은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천재적인 미술 실력을 인정받아 이미 전 세계 화랑에서 가장 값비싼 작품으로 팔리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느 건물이나 심지어 도시 전체를 감상한 후 그것을 기억하여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우린 지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눈을 감았다 뜰 필요가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 우리가 보는 세계에 의해 우리의 눈이 오히려 조정을 받고 살게 됩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세계나 경험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서는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본 것에 집착을 하고 한번 경험한 것에만 승부를 걸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사반트 신드롬을 가진 장애인을 보더라도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가 환하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책 ‘렉스’를 통해서 한 번 더 확인된 것이지만,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불량품도 천하의 최고의 걸작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이란 결코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토록 귀하게 보고 생각하던 것도 어느 날 질색을 하는 물건이 되어 버려지게 되고 버려졌던 퇴물은 어느 날 버젓이 명품이 되어 등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유행 아닙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약점과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강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한다면 이 어려운 시기가 우리에겐 더 없는 복의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김홍덕
(목사·조이장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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