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뉴욕을 떠나는 킴스 비디오 컬렉션

2009-0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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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 영 (취재 2부 기자)

‘킴스 비디오(Kim’s Video. 대표 김용만)’의 매각 과정은 이미 몇 주 전에 보도됐지만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의 전면 기사를 통해 보도된 5만5,000장에 달하는 이 업소의 비디오 컬렉션이 이태리의 살레미로 넘어가게 된 사연이 다시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자신만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각별하게 여겨지는 공간이 개인마다 존재하겠지만 킴스비디오는 영화광이나 영화 학도를 떠나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20여 년 동안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역할을 해주던 공간이다.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를 애써 폄하하는 뉴욕의 엘리트 씨네필들에게 킴스 비디오는 앤솔로지 필름 어카이브, 필름 포럼, 안젤리카 극장 등과 함께 뉴욕의 영화적 자존심을 대변하던 장소였다. (고객들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던 킴스 비디오 직원들의 오만방자함은 박찬욱 감독과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며 오히려 이 업소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를 높여주었다.)


특히 폭력과 섹스,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생각해보면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 영화는 과연 무슨 소재로 만들어져야 하나?)에 대해 앨러지 반응을 보이며 마구 가위질을 해대던 시대의 대한민국을 살아온 유학생들은 킴스 비디오 매장에 진열된 온갖 ‘도발적인’ 작품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나라에 유학 온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게다가 매장의 주인이 한인이라는 사실에 늘 뿌듯해 했던 건 아마 기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킴스비디오의 전성기는 20만 명이 넘는 회원을 자랑하던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였다. 컬럼비아 대학이 대규모 예산을 들여 새로운 기숙사 건물을 완공했을 때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기숙사내에 들어서야 할 편의 시설로 꼽은 첫 번째 매장이 바로 킴스비디오였다. 이처럼 킴스비디오는 소장품의 양을 떠나 대형 비디오 렌탈 체인점이던 블록버스터나 타워비디오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뉴욕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인터넷 다운로드 시대, 그리고 넷플릭스(Netflix) 시대를 결국 견디지 못하고 뉴욕을 상징하던 매장이 문을 닫게 된 것도 큰 아쉬움이었지만 20년이 넘게 모아져온 영상 자료의 보고들이 후원자를 찾지 못해 결국 외국에 넘겨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뉴요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킴스비디오 컬렉션을 인수하는 살레미시의 관계자는 한꺼번에 10개의 작품을 상영하는 네버 엔딩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 베니스 비엔날레와 연계하며 웹사이트를 통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모든 비디오의 DVD 전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니 그동안 묻혀있는 작품들이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날 기회가 생긴 셈이기도 하다. 비록 뉴욕을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킴스비디오라는 이름이 오히려 더욱 국제적인 문화브랜드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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