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사랑은 삶의 원동력

2009-0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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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 <주필>

가시가 있어도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장미꽃은 해마다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날개돋친듯 팔린다. 그만큼 발렌타인데이 때 제일 잘되는 것이 장미꽃 장사다. 그런데 어찌된건지 요즈음은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도 그렇게 잘 팔리던 장미꽃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제일 값비싼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요즈음은 장미꽃 값이 터무니없이 내려가서 거의 헐값이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발렌타인이라 하더라도 해마다 장미꽃을 사는 사람들의 수효도 줄어든다고 한다. 왜 그럴까?

물론 경기침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요인은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랑의 가치가 갈수록 터무니없이 싸졌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사랑도 돈과 결부돼 있는 시대가 돼버렸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의 값이 떨어진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 인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우리 같은 이민가정의 경우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사랑이 가득 피어난 얼굴로 맞아주는 아내가 있어야 하는데 사랑 대신 불만과 투정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맞는 아내가 고작이다. 네일살롱이다, 세탁소다, 야채가게다 하며 하루종일 일하는 아내들도 집에 돌아가면 사랑으로 반겨주는 남편대신 무뚝뚝하고 무언가 불만에 쌓인 남편의 얼굴을 대하기가 일쑤다. 사랑하는 마음이 삭으니까 집에는 거의 침묵만 흐른다.


노동도 힘들지만 침묵은 더욱 힘들다. 침묵은 보이지 않는 칼이나 마찬가지다. 침묵이 터지게 되면 언제나 좋은 소리, 사랑스러운 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그래서 이민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부부싸움이다. 바쁘고 힘들고 쫓기는 생활이고 보니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정상담기관에 따르면 요즈음은 경제까지 어려워져 가족간에 사랑은커녕, 침묵 아니면 다투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왔다. 우리는 이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이날이 의미하는 뜻을 다시 점검해 보고 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사랑을 확실하게 고백하는 새로운 용기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우리 한국인들은 ‘사랑한다’는 말에 솔직히 너무나 인색하고 ‘사랑’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낯설다. 그 좋은 말 한마디만 들으면 아무리 응어리졌던 마음도 다 눈 녹듯이 녹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무에 그리 어려워서 아끼고 또 아끼고 하다가 서로 간에 마음을 주고받을 좋은 기회를 다 놓치는지 모르겠다.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는 장미꽃 한 송이라도 사서 사랑한다는 말을 속으로만 하지 말고 입으로 토해내면서 화끈하게 건네 보라. 이 간단한 말과 행동이 아무리 투박한 사이라도 서로간의 관계를 더욱 부드럽고 확실하게 만든다. 해마다 돌아오는 발렌타인데이가 좋은 것은 식어가는 사랑, 혹은 무심한 사랑을 다시 한 번 깨우쳐 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모두가 초조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 초조함을 달래주는 무기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다. 설사 마음 속에 사랑이 없으면 어떤가. 건성일 지라도 그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배우자에게 건네 보라. 말이 씨가 된다고, 무심히 한 그 말 한마디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싹트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겨나는 사랑을 계속 키운다면 더 없이 좋은 남녀, 배우자간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없던 사랑도 만들려고 하는데 왜 있는 사랑을 잊어버리고 없애는가. 우리들 삶에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온돌방이고 버팀목이 되는 힘이다. 가정 안에 사랑이 없다면 무슨 수로 이 험난한 세상을 돌파한단 말인가. 사랑은 그 때 그 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남겨 좋은 사랑일수록 좋은 족적을 남긴다. 술은 한잔 마시면 한잔만큼 취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받은 것만큼 취하지 더 이상 취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되도록 많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다. 꼭 배우자만이 아니라도 좋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고 이웃이고 사랑하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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