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터치

2009-02-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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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효 섭 (아동문학가·목사)

‘오바마 터치’란 말을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화할 때 손을 많이 사용해서 효과를 더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어깨를 치거나 등을 두드리거나 손을 잡는 등 말과 손을 겸용하는 오바마의 대화법을 ‘오바마 터치’라고 한다. 그러니까 ‘오바마 터치’는 그 자체가 메시지를 품고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의도를 손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효과적인 대화법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로 삼은 것 뿐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손길을 추적하고 있다. 맹인의 눈을 만지고, 제자의 발을 씻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심지어 상여에 손을 얹는 등 그의 손이 접촉하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난다. 사랑의 터치이기 때문이다. 피부와 피부가 접촉하는 심리적 효과라기보다 그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겨 그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랑의 에너지인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에게 “나의 얼굴을 보라”고 하지 않고 “나의 손을 보라”고 하셨다. 그 손에 십자가에 달렸던 못자국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한 신문 기사를 읽고 나무나 엉뚱해서 눈을 비볐다. 이미 20여년 전에 작고한 어느 부자의 생가를 평일 300명, 주말 500명, 연간 7만 명의 인파가 계속 찾는데 대형버스 60대의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이유는 그 집에 있는 바위는 덥석 안고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빌면 부자의 기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바위에 손 한번 얹고 부자가 되겠는가? 그 손들은 사랑의 손도 아니고, 노동의 손도 아니고, 대화의 효과를 보충하는 제스처도 아니고, 욕심을 드러낸 황당한 손들이다.

뉴저지 패터슨의 한 베이글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 커피 한 컵을 사고 돈을 냈다. 주인은 거스름을 주려고 캐셔를 열었다. 그 순간 도둑은 뜨거운 커피를 주인의 얼굴에 붓고 캐셔에서 지폐 한 뭉치를 움키고 도망쳤다. 경찰관 로널드 험프리 씨는 이 케이스를 강도로 취급하고 체포령을 내렸다. “커피는 음료지만 그것을 든 손에 따라 커피도 무기로 간주할 수 있다”고 험프리 경관은 말한다. 하긴 말도 사람을 해칠 수가 있으니 혀도 무기가 될 수 있다. 흘긴 눈에 누가 큰 상처를 받았다면 눈도 무기일 수 있다. 친절한 눈동자, 고운 말, 사랑의 터치는 위로도 주고 용기도 주고 때로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젊어서 개척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다. 주일 아침 북을 치며 시장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아이들이 50명쯤 따라와 작은 예배당이 초만원을 이룬다. 교회에 보행 장애 청년이 있었다. 자기도 전도대에 들어오겠다고 해서 좋은 말로 거절하였다. 우리 행동에 속도를 낼 수 없기때문이다. 어느 주일 그는 기어이 따라왔는데 어린이 예배 중간쯤에 교회에 들어섰다. 그는 한 시각장애 소년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불쌍한 아이는 다른 주일에도 우리가 지나가는 길가에 앉아 있었을 터인데 모두가 그를 무심히 지나쳤다. 오직 이 장애자 청년만이 앞 못 보는 아이를 발견하였고, 그의 손을 잡아 주었고, 절뚝거리며 교회까지 인도해 왔다. 우리는 북 치고 노래하며 뒤따르는 50명이란 숫자에 신이 났지만 정말 사랑의 터치를 한 것은 우리가 거절한 장애자 청년이었던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좋은 교육자는 교과서를 잘 이해시키는 교사이다. 그리고 훌륭한 교육자는 학생에게 정열을 기울이는 교사이다. 그러나 위대한 교육자는 사랑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교사이다” 여기의 ‘교육자’라는 자리에 부모, 목사, 사장, 의사 등의 말을 대치해도 그대로 진리이다. 사랑의 터치를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이 위대한 부모, 위대한 목사, 위대한 사장이다.테레사 수녀를 몹시 애먹인 주정꾼이 있었다. 너무 난폭해서 아내고 딸도 도망가고 빈민굴에 혼자 살고 있었다. 테레사가 방문하여 불을 켜주면 램프를 던져 깨버린다. 이웃을 다니며 구걸해서 새 램프를 사주면 또 깨버린다. 이런 일이 있은 후 10년쯤 되어 한 의젓한 신사가 수녀원
에 찾아왔다. 램프를 네 개나 깨버렸던 그 망나니 주정꾼이었다. 그는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제가 수녀님을 괴롭힌 망나니입니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작은 가게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그 때 새 램프를 사 오셔서 불을 켜 주시는 수녀님의 손은 천사의 손 같았습니다” 사랑의 터치만이 주정꾼을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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