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을 남길 것인가?

2009-02-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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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복림 ( 한미장학재단 동북부지부 회장)

뉴욕 한인사회의 은퇴 층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처럼 오래 사는 세상에 어느 정도의 나이가 노인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65세는 아닌 것 같고 적어도 70은 넘어야 할 것 같다. 노인이라고 특별히 대접을 받는 것도 없으니 어떻게 하든지 건강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돈 걱정 안하고 편안하게 사는 층이 은퇴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30-40년 전에 맨 손으로 미국에 온 개척자 들이다.로보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남들이 잘 안 다니는 길’을 택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민 선배들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열심히 일해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이제 다리를 뻗고 쉬고 있다. 이민 1세의 편안한 은퇴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 땀 흘
려 얻어낸 노력의 대가이다.


얼마나 길고 험난한 길이었던가. 넘어질 듯하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는 정상에 서서 아득하게 먼 길을 내려다보며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한다. 한인사회에는 불행하게도 너무 열심히 일만 하다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해 병으로 일찍 쓰러진 분들도 많다. 자기의 건강만 믿지 말고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각종 검사를 받아 왔더라면 생존했을 분들도 많을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병은 돌보면서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아 일찍 돌아가신 의사들도 많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은퇴 층들은 한번 쯤 심각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쓰고 남은 것은 고스란히 자식에게 물려줄 것인가. 남은 시간을 골프나 치고 부부끼리 크루즈 여행이나 하며 보낼 것인가 .무언가 유산(Legacy)을 남겼으면 한다. 평생 힘들게 돈만 벌고, 모은 재산이 아까워 벌벌 떨며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를 위해 보람 있는 유산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다.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 커뮤니티 봉사, 자선사업, 예술 분야에서 업적을 남기는 일이다.

내가 소속해 있는 한미장학재단은 30년 전 가난한 한인학생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이다. 미국에 6개 지부를 두고 2007년 현재 380만 달러의 기금을 모아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그해 284명의 학생들에게 총 41만 5천 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했다.한미장학재단 뉴욕지부가 확보한 장학기금 가운데는 추모 장학기금이 상당수 있다.9.11테러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한 가정은 10만 달러를 기증하고, 2-3년 이내에 10만 달러를 더 내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을 잃은 한 부모는 매년 1만 달러의 장학금을 기증하고 있다. 이밖에 독립투사의 후손이 아버지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구 장학금을 설립한 이사도 있다. 어떤 이사들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들어온 조의금에 매칭 펀드를 더해 우리 재단에 내 놓았
다.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남편이 작고한 후 추모장학금을 기증하려다 자식의 반대로 망설이는 가정이 있다.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겨우 졸업한 사람이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장학재단에 5만 달러를 기증한 의사, 큰돈은 내놓지 못하나 장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이사들도 있다.
봉사도 하다보면 가속이 붙어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어떻게 번 돈인데 하고 움켜쥐고 있을 수도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눌 수도 있다. 돌아가신 분이 남긴 유산으로 여생을 여유 있게 보내는 사람도, 이중 적은 부분을 떼어 내 그분의 뜻을 기리는 장학금을 기부하는 분도 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조용한 시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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