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권도와 한류

2009-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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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준 재 (내과전문의)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들어 익히 알고있는 단어중의 하나가 ‘태권도’다. 요즘은 국호인 ‘코리아’만큼 해외에서 귀에 익숙해져있는 단어가 태권도라는 단어다. 말로만 들어오던 태권도를 실제 재워본 것은 군사 기초훈련 과정이었다. 1960년대부터 군이나 경찰에서 정신.

신체단련 과목으로 태권도가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차 군의관으로 군 요원이 될 우리들에게는 발과 손을 써야하는 태권이지만 손놀림은 환자진료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약식 태권도를 배웠다. 그것이 태권도 수련의 전부이지만 관중의 입장에서 대련이라든지 격파 등의 태권도 시범경기를 보며 살아왔고 드디어 2000년 37억 세계인들이 지켜본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태권도가 1971년 박정희 대통령(1961-1979) 시절 국기(國技)로 채택된 이후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나라 역사만큼 긴 태권도의 약사(略史)를 한번 보자(오류가 있으면 정정해주기 바람).


삼국을 통일한 신라(57B.C-935A.D)의 화랑정신은 통일신라(668-935)를 이룩하기 이전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제 24대 진흥왕(540-576)때 국가운영 인재 양성책으로 원광법사의 화랑도 육성에 그 힘을 입고 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통일신라를 지나 고려왕조(918-1392)에 이르러서는 태권도가 더욱 융성하다가 이씨 조선(1394-1910) 500년은 문(文)을 숭앙하고 무(武)를 경시하는 풍조에 태권도의 쇠락도 알만하다.

문약(文弱)에 흐른 그들 이조 500년은 드디어는 36년간의 일제 식민국이 되어 백성들에게 수난의 세월을 안겨 주었던 것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삼국통일의 근간이 된 화랑도 정신을 바탕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경기 종목이 된 국기 태권도의 전세계 파급효과는 현재 전세계 192개 국가중 168개 국가에 퍼져 있다. 세계 인구 60억중 8000만 명이 현재 태권도인이 되어 오늘도 우리말인 ‘차려’ ‘경례‘등 호령에 따라 정신. 신체단련에 여념이 없다.

1990년대 불기 시작한 세계화는 이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흐름이다. 서로가 개방 속에 경쟁하면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명제 속에 살게 된 것이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우리 것을 아끼고 다듬어 세상에 보여주며 우리 것을 입고, 먹고 우리 것을 보고(영화나 드라마) 더 나아가 우리를 찾아오게(관광) 만들어 우리의 문화 전반의 공유이자 그런 과정의 총체적 유도방향이 한류(Korean Wave)의 시작이자 끝이다.

우리가 한류 하면 배용준의 ‘겨울연가(2002)’가 동남아를 휩쓸기 시작하고, 이제는 아프리카까지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곳곳에 스며들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외화벌이에도 톡톡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한류 훨씬 이전, 50여년 전에 그 한류의 원조로 태권도를 다시 한번 재고하는 자세가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을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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