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깍두기 신세는 이제 그만~

2009-0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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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 은 (취재 1부 부장대우)

1월 중순 퀸즈칼리지에서 열린 그레이스 맹 뉴욕주하원의원의 취임식은 역시나(?) ‘중국판’ 일색이었다.

무대 옆에 마련된 특별석에 앉은 30여명에 가까운 인사들 가운데 한인은 달랑 두 명. 그것도 맹 의원의 한국인 남편이 그 중 한 명이었고 나머지는 뉴욕의 한인 인사도 아니고 뜬금없이 멀리 뉴저지 레오니아에서 건너온 최용식 시의원이 고작이었다. 정치인들과 중국사회 관계자들이 길고긴 축사를 줄줄이 하느라 장내가 한참 지루해지고 난 뒤에야 마지막으로 최 시의원의 축사를 겨우 한 마디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맹 의원이 중국인이
라서 그렇긴 하겠지만 단상에 오른 인사들은 하나 같이 중국말로 첫 축하인사를 전하기 바빴다. 그것도 모자라 최 시의원마저도 첫 마디를 중국말로 인사하고 나니 그나마 ‘그가 유일한 한인으로 축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 알 뿐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씁쓸했다.


지난해 선거 캠페인이 한창일 때 맹 의원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중국인으로 한인사회와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를 부각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애를 썼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취임식 한 장면만 보고 속단하긴 이르지만 앞으로 그가 얼마나 한인사회를 포용하며 활동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요즘 뉴욕·뉴저지 각 급 학교마다 설 행사도 줄을 잇고 있다. 그나마 아직까지 설 행사만큼은 중국인보다는 그래도 한인들이 주도적인 편이어서 살짝 위로를 받기는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대다수는 설을 ‘아시아의 설’도 아니고 늘 ‘중국 설(Chines New Year)’로 부르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때로 울화가 치밀 정도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뉴저지 레오니아의 애나 C. 스콧 초등학교 한인학부모들이 학교 설 행사에서 ‘중국 설’ 간판을 영원히 내리고 ‘음력설(Lunar New Year)’ 간판을 공식적으로 달게 했다는 이야기는 큰 용기와 힘이 된다.

뉴욕 퀸즈 한복판에 자리 잡았던 한인 타운이 중국인들에 의해 서서히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플러싱 다운타운의 주요 상가도 중국인에게 내어준 지 이미 오래다. 우리가 힘들게 일궈 놓은 텃밭에서 그들이 지금은 주인이 됐다. 한인들은 우리 손으로 찾아야 할 우리의 권리가 있을 때에도 스스로 나서기 보다는 중국인들의 움직임에 슬쩍 묻어가려는 얄미운(?) 성향을 보일 때도 많다. 중국인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가자는 속셈을 보일 때도 있고 때론 우리 밥그릇도 못 찾아 눈칫밥을 먹을지를
망설이기도 한다.

결국 중국인에게 주도권을 통째로 안겨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거저 얻고 나서도 꼭 나중에는 투덜대는 한 마디를 던지고야 마는 것이 바로 우리 한인들인 것도 사실이다. 올 11월에는 뉴욕시선거가 치러진다. 뉴욕의 아시안 정치인 1호 탄생 자리는 시정부와 주정부에서 모두 이미 중국인에게 내어줬지만 이제라도 뉴욕의 첫 한인 정치인 탄생 주인공이 되겠다
며 출사표를 던지는 한인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아무쪼록 이번 선거의 승리로 이제는 정말이지 남의 놀이에 ‘깍두기’ 신세로 업혀가는 것이 아니라 한인이 뉴욕·뉴저지 아시안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그런 세상의 주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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