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자살은 죄악이다

2009-0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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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 <주필>


요즈음은 접하는 회계사들마다 한인들의 재정상태가 영 말이 아니라고 한다. 찾아오는 고객들 중에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겨우면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겠는가.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 보니 실제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끝이 안 보이는 암흑의 터널에서 요즘 미국사회에서도 가족 동반 자살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이 어디 이들 가정뿐일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금 우리사회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마지막 길을 택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지 모른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가정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정도로 경제가 위기다. 이대로 가다간 앞으로 어느 가정이고 온전할 집이 없어 보인다. 있는 자는 주식 값이 폭락하고
가진 부동산의 모기지가 체납되며 그동안 잘해오던 사업체의 존속마저 위태롭다.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직장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에다 모든 물가가 턱없이 올라 살아내기가 너무나 버겁다. 그렇다고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한 세상을 살지만 생명은 내 것이 아니다. 위로는 하늘의 것이고 옆으로는 배우자의 것이며 아래로는 자식의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어디 나만이 어려운가? 자신보다 더 극한 상황에서 한탄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이만한 어려움쯤은 얼마든지 이겨내야 한다. 그런데 한인들은 좋아도 ‘죽겠다’ 싫어도 ‘죽겠다’ 잠이 와도 ‘죽겠다’ 배가 고파도 ‘죽겠다’ 이런 표현을 일상적으로 많이 쓴다. ‘죽겠다’ 하는 표현을 이렇게 자주 쓰는 민족은 아마 한민족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표현을 쉽게 한다는 얘기는 ‘죽음’이라는 자체를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사람이 다 참고 견디는 건 그래도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가 한국역사 5천년에 어디 한 두 번이었는가. 우리는 수천, 수만 번의 어려운 경제를 겪어낸 민족이다. 식량이 없을 때는 풀뿌리까지 캐먹으면서 목숨을 연명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목숨을 이어가려고 애를 썼는가? 그것은 앞에서 말했듯, 나를 태어나게 한 창조주와 사랑하는 배우자, 그리고 자식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마음에서 그랬든 것이다.

미국경제가 지금 아무리 어렵다고 하여도 세계 다른 국가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 경제는 부자의 경제다. 지금의 이 어려움을 헤어날 수 없는 불황이라 생각하고 좌절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장사가 망해서 파산신고까지 하는 사람들, 있는 집을 팔아 빚 갚으며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들. 그것이 바로 삶의 힘이요, 희망이다. 그런 힘이 없는 사람은 새로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러고서도 죽어야 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 때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다분히 혈기가 많은 민족이라 그래선지 순간적인 충동에서 자살을 하고, 술 한 잔 먹고 주정하다 자살하고, 살기가 어렵다고 자살하곤 한다. 이런 모순된 성격과 행동은 누구에게서고 인정받을 수 없고 동정받기 어려운 행위다.미국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목숨을 끊는가, 그것도 죄 없는 가족까지 동반해서... 동기가 여하튼간에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종교적 교리로 보아도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 연옥도, 천당도 못가고 막 바로 지옥으로 떨어진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다.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오게 마련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하였다. 아무리 힘든 고비라도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한다면 못 넘을 산이 없다. 내가 아무리 죽고 싶어도 견디어 보라. 소나기가 오고 나면 무지개가 뜨듯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살은 무조건 죄악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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