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운 선생님

2009-02-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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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열(페이스대 석좌교수)

매우 어렵던 필자의 어린 시절, 너무나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에게서 도저히 갚지 못할 은혜를 받았다. 어려운 경제의 새해에 그리운 박이준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시다.

선생님은 필자가 중3(이곳 9학년) 때 담임을 하셨던 분이다. 키가 크고 체격이 늘씬하면서 잘 생기셨던 분으로 수학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무척 엄하고 규율을 적용하시는데 예외가 없어서 우리 모두가 무서워했다. 담임을 맡으신지 얼마 안 되는 날이었는데, 그때는 4교시가 끝나야 오
는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3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일찍 먹는 간덩이가 큰 급우들이 몇몇 있었다.

왠지 어느 날, 나도 그 간덩이 큰 대열에 끼이고 싶었다. 그런데 원래 처음 해보는 도둑이 잘 잡히듯이, 갑자기 무슨 파일을 가지러 교실에 들른 선생님한테 제꺽 걸린 것이다. 자주 하던 애들은 그날따라 안 잡히고 억울(?)하게 초범인 내가 세 명 현행범 중 하나로 잡히게 되었다. 그런데 회초리 한 대씩 맞은 다른 두 급우의 처벌이 끝나자 선생님은 더 큰 회초리를 골라 드시더니 작심하신 듯 몇 대를 연거푸 때리시는데 정말 눈물이 쫙 쏟아지도록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필자가 더 큰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그 몇 달 전에 선생님께서 먼저 같은 학교로 전근이 되셨던 터라 학교 첫 등교일 방과 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아마 기다리셨던지 조용히 인사를 받으신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객지에서 부모님을 떠나 학업을 하니 좋은 친구를 골라서 사귀고, 항상 객지에서는 급하게 돈이 필요할 수가 있으니 그때는 나에게 오너라.

실제 급한 일이 있어 3년 고교 재학 중 두 번을 선생님께 돈 문제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첫 번째 빌린 돈을 집에서 돈이 와서 갚으러 간 자리에서는 선생님께서는 그래, 집에서 돈이 왔느냐라고 말씀하시며 돈을 받으셨다. 이다음 급하면 다시 빌리러 오너라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필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야 깨달은 것은, 학교 교사를 하시던 선생님이 어른들의 용돈으로도 상당한 액수였던 그 돈을 빌려주시려면, 항상 상당한 액수를 지갑에 넣고 다니셔야 가능했을 거란 사실이었다.

필자가 두 번째 빌린 돈을 갚으러 선생님께 간 것은 고교졸업 한 달쯤 전이었다. 고마왔다고 인사를 하는 제자에게 선생님께서는 “그 돈은 네 몫으로 떼 논 돈이니까 대학 가서 좋은데 써라며 다시 돌려주셨다. 찡한 코에 어찌할 수 없이 당황하고 서 있는 제자를 뒤에 두고 교무실 쪽으로 걸어가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필자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세월이 가고, 자식이 없으시던 선생님의 그 후는 어떻게 되셨는지 이 배은망덕한 제자는 고국을 찾아 수소문을 해보지도 못했고 오랜 동안의 죄의식으로 남아 있다. 이 다음에는 무슨 방법으로든 선생님의 그 후를 알아보겠다는 결심이 또다시 바쁜 일들이 겹치면 후순위로 밀려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어려운 경제. 우리의 어린 시절은 온 나라가 다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 우리는 훨씬 지금보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어른들의 엄하나 따스한 사랑 속에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많은 여러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사랑과 교훈을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힘들더라도 정도를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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