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설/ 재외동포 참정권, 시행이 문제다

2009-01-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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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미주 한인들이 원했던 해외 동포 참정권 문제가 해결됐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29일 재외국민 투표조항과 관련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공직선거법, 국민투표법, 주민투표법 개정안을 처리, 재미 한인을 포함한 240만 해외 한인이 국민 투표에 참가하는 길을 열었다.

새 법안에 따르면 19세 이상 영주권자를 포함, 미주 한인들은 2012년부터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한미 간의 거리가 날로 좁아지고 있는 21세기 들어 미주 한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동안 말로만 외치던 한국 정치인들의 재외 동포 권익 보장 등의 약속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고 한국 정부의 한인들에 대한 배려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가뜩이나 미국보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한인들이 미국에 살면서 직면하는 사회적 이슈는 제쳐 두고 한국 정파 간의 다툼에 말려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각 지역 각 정파로 갈려 싸움을 벌인다면 한인 사회의 분열은 물론이고 미국 정착과 주류 사회 진출이 어려워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막상 투표를 실시할 경우 그 시행을 둘러싼 문제점도 예상할 수 있다. 미주 한인의 경우 현재법규로서는 지역 영사관 등 공관에 가 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하나 뿐인 뉴욕 총영사관과 문화원에서 뉴욕 및 뉴저지 전체 한인이 투표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또 그런 시설이 마련된다 해도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떨어져 있는 지역에 사는 한인이 얼마나 참여할 지도 불확실하다. 수년 전 멕시코 정부도 미국 내 거주 멕시코 인들에게 영사관과 우편 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기대가 컸으나 막상 투표율은 극히 저조해 이 제도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던 사례도 있다. 재외 한인들의 투표 참여를 높이기 위해 인터넷 투표 등도 한 때 고려됐으나 한국 정부 일각에서 국내에서도 없는 제도를 해외에 먼저 시행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조건 반대부터 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검토를 해 볼 필요도 있다.

재외 한인 권익 신장의 획기적인 기회가 될 수 있는 참정권 부여가 시행착오와 부작용 속에 “안하느니만 못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미주 한인사회와 한국 정부가 함께 바른 시행을 위한 치밀한 준비 작업을 펴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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