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이코패스에 대한 단상

2009-02-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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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군포여대생 납치살해사건으로 온 나라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도 소박한 꿈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던 20대 꽃다운 여학생이 끔직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아무 잘못이나 이유도 없이 무고한 한 생명이 처참히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원통했을까? 아직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도 어리고 너무 억울하다.

용의자인 강 모씨의 범행수법과 범죄인멸 방법이 상당히 치밀했다. 본인은 충동적으로 저지른 범죄라고 말하지만 납치에서부터 사체암매장까지 걸린 시간이 4시간에 불과했고 그 수법은 매우 치밀하게 계획되었다. 더욱이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을 때 가발을 사용하고 지문을 남기지 않은 점, 범죄에 사용된 차량을 모두 불태운 점, 그리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피해자의 손톱을 자른 점 등은 연쇄살인범의 치밀하고 대담한 수법과 유사하다. 실제로 경찰은 강씨의 첫 번째 부인 실종사건과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화재사망 사건, 그리고 경기 남서부 일대에서 발생되었던 유사사건과의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강씨의 이웃과 직장 동료들은 성실하고 자상한 사람이 잔혹한 범죄자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강씨는 수 억 대의 4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형과 함께 수 십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부인과 사별한 후 청소년인 두 아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처럼 보여 진다. 용의자 강씨는 반인륜적인 범죄행각과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엽기살인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고급차를 몰던 부녀자들을 납치해 살해한 후 소각한 지존파 사건, 21명을 잔인하게 살인했던 유영철 사건, 안양 초등학생 혜진이, 예슬이 살해사건 등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전형적인 사건에 속한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1920년대 독일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는데, 범죄, 성적욕망, 공격성에 대한 통제력이 매우 부족하고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는 정신병질 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미국 정신진단편람에 정의된 바로는 반사회적성격의 소유자라고도 볼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기제가 미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적,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다.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의 90%, 전인구 중 1%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놀라운 것은 사이코패스의 특성상 주변 사람, 심지어 가족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일반인처럼 생활하지만 숨겨진 가면 속에 섬뜻한 범죄본능이 움츠리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 범행 같은 반사회적 행위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고, 과대 망상적이며,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허구와 거짓으로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다.

이번 군포 여대생 납치살인사건을 접하면서 또 한 명의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예감하게 된다. 경찰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지금까지 보여진 특성을 종합해 볼 때 그럴 개연성이 매우 높다. 흔히들 사이코패스를 현대인이 말들어낸 ‘악마’ 혹은 ‘돌연변이 괴물’이라고 말한다. 아주 섬뜩한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정확한 치료방법이나 대처방법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산업발전의 산물로 자연이 파괴되듯이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의 인간성을 무참히 파괴하는 듯해 보인다. 괴물을 만들어 내는 사회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인간성의 회복에 관심과 노력이 매우 필요한 시대이다. 그것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지워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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