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진정한 영웅

2009-0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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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말머리를 세우며 시작합니다.

“그의 야망은 끝이 없었고 그의 대군은 아시아를 건너 유럽까지 그들의 광기를 발산시켰다. 그는 칭기즈칸이었다. 칭기즈칸은 그 생애 자체가 전설이다. 몽골의 전사들에게 그는 영웅이었고 적에게는 ‘지옥의 말 탄 기사’, 바로 ‘지옥의 사자’였다.”

1997년 4월 발행된 뉴욕 타임지는 세계를 움직인 역사적인 인물들 중 첫 번째로 몽골제국(13세기경)의 태조인 칭기즈칸을 뽑았습니다. 그는 거의 800여년이 지난 현대에 이르러서야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 받게 된 것입니다.


살아생전 그의 말들이 거센 갈기를 휘날리며 전력 질주하는 속도로 광활한 대륙을 점령해 갔다는 땅의 넓이는 로마제국 영토의 무려 4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인류사에 유래 없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하늘의 아들’이란 뜻)은 또한 그가 몸소 체득한 삶의 지혜들을 엮어 후손들에게 어록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

그가 남긴 어록 중 일부는 시공을 넘어 오늘 날 여러모로 암울한 난관에 처한 지구촌 사람들에게도 되새겨 볼 만한 절절한 언표라 여겨집니다.

세계 제패라는 웅혼한 꿈을 지녔던 그는 불퇴전의 기백과 불굴의 의지로 황량한 평원을 달리고 아스라이 불타는 지평선을 넘어, 넘어 그 꿈을 실현시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린 끝에 그 꿈을 이루었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뺨에 화살을,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죽을힘을 다해 도망친 적도 있었다. 적에게 포위되어 빗발치는 화살을 칼로 쳐내며 어떤 때는 미처 막지 못해 부하들이 대신 몸으로 맞으면서 탈출한 적도 있었다. 나는 전쟁을 할 때면 언제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겼다.’

또한 그는 치열한 삶 속에서 가장 힘센 씨름꾼을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솟구치는 분노와 증오심을 이기는 것이었으며, 인욕을 들판의 사자를 이기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고도 했습니다. ‘극도의 절망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되었을 때도, 그래서 아내가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적들은 알지 못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처절한 자기 절제와 극기, 그리고 번뜩이는 지혜로 칭기즈칸은 비로소 칭기즈칸이 됩니다. ‘나는 죽기도 전에 먼저 죽는 사람을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버린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그러나 우주의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자비의 화신이신 붓다께서는 인간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란 삼독(三毒)의 덩어리인 ‘자신’ 뿐임을 천명하셨습니다.

‘살육의 현장인 전쟁터에서 백만 명을 이기기보다 자기 하나를 이기는 이가 진정한 영웅이다.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이런 사람을, 이런 이의 승리를 신도 마왕도 꺾을 수 없다.”

박재욱
(LA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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