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어의 선물

2009-01-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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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지난 봄 부터 새로운 가정을 꾸미려는 고객과 꾸준히 집을 보았다. 특별히 학군이나 프리웨이가 가까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 않아 오히려 선택의 범위가 넓었다. 딱 한 눈에 들어오는 집이 없어 매주 만나다 보니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이처럼 친근감이 들었다.


에이전트와 고객의 사이란 집을 놓고 공적으로 만나기에 특별히 사적으로 가까워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특별히 가까워도 또 너무 거리감을 두어도 때론 어려운 관계가 될 수 있기에 딜이 끝날 때까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에이전트마다 나름대로 징크스를 갖고 있는데 필자의 경우는 에스크로가 끝나기 전에 식사라도 하면 왠지 그 딜이 성사되지 않거나 부득이한 잡음이 생겨 가급적이면 약속을 잡을 때 식사시간대를 피하는 편이다.

한 두 달 지나도 마땅한 집이없어 그 고객에겐 좀 더 기다리라는 부탁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자주 만나게 되면서그들의 어렵사리 맺어진 인연을 듣고 난 후 좀 더 좋고 예쁜 집을 골라주느라 꽤나 분주했다.

그들은 서로 스무 살 대학시절부터 만난 연인이었지만 집안 반대로 결혼을 못하고 더구나 한 쪽이 먼저 이민 오느라 그나마 잘잘한 모든 인연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왔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각각 독신으로 살고 있다가 우연히 재회하게 됐다.

가장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고 난 후라고 했는지 그렇게 어렵게 다시 만나서는 그간 서로 가슴에 담쌓고 산 세월들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고 고백하며 마주잡는 두 손이 아름답게 만 보였다.


드라마보다 더 감동을 주는 그 고객의 사연에 가슴 뭉클해지며 동화에 나오는 집처럼 그렇게 예쁜 집을 골라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기다림이란 보상을 충분한 사랑으로 되받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싱그러운 느낌을 받아 그렇게 매번 여러 집을 보고 다녀도 전혀 힘겹지 않았다.
그러기를 여러 달, 특별히 가격이 월등히 싼 집이거나 주인이 잘 관리한 집에 중점을 두다보니 어느 새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단지 지면 광고로 만나게 된 짧은 안면인데도 또 다른 에이전트를 만나거나 여기저기 저울질하지 않고 믿어주는 그 신뢰가 고맙기만 했다.

딜보다 중요한 건 서로간의 믿음인데 굳이 생색내지 않아도 마음을 읽은 듯 최종 선택을 에이전트에게 맡길 만큼의 진솔함을 얻게 돼 오랜만에 큰보람을 느꼈다.

그들은 REO 매물과 SHORT SALE에 오퍼를 넣었다가 마냥 기다리거나 때론 고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꼭 학군이 필요하지 않다면 셀러가 잘 관리한 집을 권한다는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렇게 긴 시간 끝에 서로 공감한 집을 골라 오퍼를 쓴 날은 내 집을 산 듯 설랬다.
그러나 이미 여러 개의 오퍼가 들어왔다는 말이 잠시 낙심들게 했다.
어렵게 긴 시간을 두고 고른 매물에 그렇게 많은 바이어가 관심을 갖고 있다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기다림 밖에 없었다.

단 한 번 만난 셀러에게 우리가 그 집을 얼마나 원하는지 알게 할 수는 없었지만 바이어는 끝까지 필자의 의견을 물으며 카운터 오퍼에 기꺼이 사인했다.
요즘 같은 동향에도 카운터 오퍼에 사인해서 원하는 그 집을 사게 된 그들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기다림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순간에 결정해야 해요. 세상에 똑같은 집은 없으니까요.” 늦게 받은 축복을 주변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나누는 그들을 이웃으로 둔 건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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