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우리의 책임의식

2009-01-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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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 <주필>

지난 20일 역사적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우리 각자의 ‘책임의식’을 무엇보다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 책임의식을 통해 180여 민족이 어우러진 다양성 속에서 통합된 힘을 보여주고 이 힘을 통해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옛 미국의 영광을 재건해 나가자는 것이 그가 말하는 요지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아무리 인종이 많더라도 보이지 않는 질서와 규범 속에 별 문제없이 단결하며 잘 굴러온 나라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이민 와 놀랐을 때처럼 수퍼마켓이나 우체국, 혹은 공원을 가도 어디서건 사람들이 아무리 줄이 길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하나도 불평없이 자기의 차례가 올 때 까지 순서에 맞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이렇게 자신이 속해있는 직장이나 단체, 커뮤니티에 어느 것 하나라도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데 대해 정말 놀라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적은 것을 보면 큰 것을 안다고 이들이 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왜 이렇게 인종이 다양함에도 불구, 큰 나라를 이루고 있을 수 있을까 이해되곤 하였다.


그것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가 보든, 안보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책임감을 갖고 이 책임에 위배되지 않는 방향으로 살려고 하는 의지가 생활화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나라의 그 수많은 인종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 놓인 할 일과 자기 자신이 져야 할 도덕적인 책임들을 너도 나도 나 몰라라 하거나 무관심하게 넘긴다면 이 나라의 존속이 과연 가능할까?

길거리에 수많은 차량과 인파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 나라의 저력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다. 숱한 언어와 피부색, 문화가 다른 민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면서도 별다른 사고나 충돌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정말 위대한 나라구나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변에 흐르는 이러한 질서와 개개인이 가진 책임의식이 결국 내가 속한 직장이나 단체, 이웃, 나아가서는 커뮤니티,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이 ‘책임의식’이란 단어의 밑바닥에는 이 나라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살라드 보울, 즉 세계의 모든 인종들이 저마다 내는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 맛이 하나로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러한 의식이 9.11테러 같은 엄청난 사건 속
에서도 미국이 강건하게 일어났으며, 3년 전 발생한 뉴욕시 정전사태 때 전 시가지가 암흑이 되었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온 시민이 하나가 되어 그 난리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번 취임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 책임의식을 특별히 지적한 이유도 그만큼 개개인의 책임의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책임의식의 결여는 결국 나라의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도 변화를 추구하는 커뮤니티로 힘을 모아야지 분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인들의 텃밭인 플러싱 메인스트릿, 유니언에 이어 이제는 노던 상권까지 잠식당하는 건 우리의 책임의식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각자가 도덕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가정이 붕괴되고 직장이 무너지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와 사회, 국가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번 미국이 당면한 경제위기도 그 근원에는 부자들의 도덕적인 의무와 책임의식의 결여가 문제였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우리의 삶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단어에는 영어로 리스판드(respond), 즉 반응한다, 응답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우리는 결국 반응하고 응답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새 시대를 열어가려고 하는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도 우리 한인 각자가 바른 응답을 하며 살아갈 때 바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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