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로벌 디아스포라 (Global Diaspora)

2009-01-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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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자(의 사)

지난주 말 뉴저지 남부 컨추리 클럽에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동료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창밖에는 흰 눈송이가 쏟아지고 있는데 벽난로에서는 마른 장작이 빨간 불꽃을 튀기며 타오르고 있다. 그날 생일잔치에서 하이라이트는 두 아들이 만든 회고록 동영상인 다큐멘터리 드라마였다.
생일잔치의 주인공인 어머니의 생애를 금방 태어난 간난 아기로부터 돋보기를 쓰고 손자를 안고 있는 지금의 모습까지 지나간 시간들의 조각을 짜깁기하여 편집한 것이다.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부딪치며 살아온 모든 이민자들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련의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이야기다.

그녀는 필리핀에서 중국화교 이민 1세의 첫딸로 태어난다. 중국 동남부에서 태어난 그녀의 아버지는 홀몸으로 고국을 떠나 동남아시아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뿌리를 내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바닷길 실크로드로 해상 자유무역을 개척했던 후예가 아닐까? 동영상 사진 속에 그녀의 생애 전환점은 목이 긴 두루미와 같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된 청초한 모습이다. 이때부터 동영상은 박진감 있고 빠르게 진행된다. 그녀는 태어난곳에 머물지 않고 다시 미국대륙으로 끝없이 낯선 땅으로 이동하는, 매우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땅에 정착한 중국화교로 그녀는 정신과개업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수많은 환자들이 그녀를 찾아와 울고 웃는 한풀이를 쏟아놓는다. 그녀는 낯선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인 환자들의 슬픔으로 응고된 덩어리를 녹이는 촉매작용을 하고 있다. 생일잔치에 모인 사람들은 중국 남부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역동적인 언어로 들렸다. 나는 늘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쪼개지고 수많은 방언을 쓰는 넓은 중국 땅에서 수천 년을 걸치면서 하나의 민족으로 묶을 수 있었던 끈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들에게 물으니 동아시아 문명의 꽃인 한자 때문이라고 한다. 표의문자로 언어의 음과 상관없이 글로서 뜻을 풀이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화 시대에 여러 곳에 흩어져 살면서 중국의 정체성을 지닌 민족공동체 네트워크의 그물망을 짜고 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서 떠돌이로 살아가는 유랑민에서 발전한 ‘글로벌 세계화 디아스포라(global Diaspora)’라는 새롭게 탄생한 현대적 개념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화교들은 중국에 투자를 쏟아 붓고 있는 중국 울타리 밖의 거대한 경제조직으로 중국경제의 원동력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뒤늦게 21세기형 차이나타운’을 만들자는 움직임의 바람이 불고 있다. 화교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 협력 공동체 활동을 펼치려는 속셈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중국 화교가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불모지대다. 1960-70년대 우리 땅에 오랜 기간 정착해 온 소수민족 집단인 화교들에게 가해진 압박과 차별의 국가시책은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힌 채 한국 땅에서 그들을 피눈물을 흘리며 떠나게 만들었다. 우리의 배타적인 의식이 빚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나는 중국친구와 오래 사귀면서 느낀 것은 인간관계에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과의 인간관계는 수평관계 속에서 합리적이고 실리적이다. 그러나 지나친 개인주의는 일회용 냉동음식처럼 따뜻한 인간미가 없다. 중국인과 서로 믿는 친구가 되기까지는 젖을 짜서 단단한 치즈로 응고되기까지 오랜 숙성기간이 필요하듯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서로 믿는다는 신의가 마음속에 각인되면 영원한 친구로 남는다. 동아시아에 깊이 뿌리를 내린 ‘의리’ 라는 유교의 기본 윤리 때문이 아닐까?

중국은 오랜 역사와 문화의 동질성을 갖고 있는 생존전략의 파트너이다. 나는 다가오는 설날, 그녀를 집에 초대하여 떡국을 끓여먹을 생각이다. 앞으로는 달력에 중국 설날이 아닌 음력 설(Lunar New Year)로 바꾸어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한국인인 나와 중국의 혈통인 그녀, 우리 모두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의 홀씨처럼 미국 땅에 날아와 씨를 뿌린 ‘글로벌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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