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겨울 산행

2009-01-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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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 논설위원)

겨울 산행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해 준다. 또 밝게도 해 준다. 건강에도 좋다. 눈이 펑펑 내릴 때 산에 오르는 그 맛은 오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말만 되면 가게 되는 산행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게 되니 이제는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특히 산행은 겨울 산행이 별미다. 여기서 별미라 함은 그만큼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뉴욕시에서 가장 가까운 산들은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지나 팰리세이드파크웨이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온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곳 중의 하나는 출구 17번으로 나가면 큰 주차장이 나오는 곳이다. 그곳에 주차를 시켜놓으면 여러 갈래의 산행길이 있다. 산행 길 중엔 쉘터, 즉 쉬는 곳도 나온다. 겨울 산행은 이 쉘터까지 가서 뜨거운 커피나 차를 마시고 가지고 온 음식을 동행들과 같이 먹
으면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허드슨 강과 맨하탄을 바라다보는 느긋함에도 있다. 날씨가 몹시 추운 날은 옷을 든든히 입고 산을 올라야 한다. 요즘같이 눈이 많이 오는 때에는 반드시 ‘아이젠’ 등의 장비를 갖추고 등산화에 장착해야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눈이 하얗게 덮인 산을 오르다 보면 가끔 노루들을 만난다. 어미 노루와 함께 새끼 노루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나오는 모양이다. 그들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하지를 않는다. 사냥꾼이 많은 산이라면 그들도 사람을 무서워 할 것이다. 그러나 뉴욕 인근의 산들은 사냥을 하지 않는 곳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노루들은 사람을 보아도 금방 도망가지를 않는다.


언젠가는 그들과 눈싸움까지 한 적이 있다. 서로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들의 눈망울이 어찌나 맑고 고운지 가끔 생각이 난다. 가까운 곳에서 만났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서로 눈을 바라보고 기 싸움이라도 할라치면 조금은 두려운 생각도 난다. 갑자기 달려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런 적은 없다.

겨울엔 나무들이 모두 벌거벗는다. 여름철, 그렇게 무성했던 잎들이 모두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가지들만 겨울을 지새운다. 자동차를 몰고 팰리세이드파크웨이를 달리다 보면 주위의 나무들이 모두 회색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사람들을 반긴다. 그러나 눈이 오는 날이면 그 앙상한 가지에 눈꽃을 피워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준다. 겨울비가 온 뒤, 기온이 떨어진 다음의 겨울 산행은 또 다른 별미를 제공해 준다. 나무들이 모두 수정같이 반짝거리는 수정나무들이 된다. 가지들에 녹아 있던 물기들이 모두 얼음들이 되어 수정처럼 빛나는 것이다. 한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산을 뒤덮고 있는 모든 나무들이 그러니 온 산이 수정나무들의 산처럼 반짝거린다. 요정의 나라에 온 듯, 착각을 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겨울 산행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리고 추운 날, 집에서 재미있는 비디오나 보면서 지내지 왜 산에 가냐고들 한다.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겨울 산행은 올라갈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한 시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눈 팔면 미끄러져 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하게 서둘러 산행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시간 조정을 잘하여야 한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등에서 땀이 난다. 아무리 추운 날도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그것이 많은 운동이 되기에 그럴 것이다. 땀이 나서 두껍게 입었던 옷들을 벗어야 될 때도 있다. 겨울엔 배낭에 또 다른 옷을 준비해 가야 한다. 산 정상에서는 땀이 났던 옷을 바꾸어 입으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지난번 겨울 산행은 75세의 원로 한인과 함께 했다. 나이 75세면 할아버지인데도 건강하게 산행을 즐긴다. 젊은이 못지않게 산을 오르고 내리는 그 모습이 너무나 좋게만 비친다. 그는 나이 들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는 등산이라고 말한다. 특히 겨울 산행은 몸에도 좋지만 마음 건강에도 좋다며 권장한다. 움츠러들어가기만 할 겨울 추운 날씨에도 산에 가면 산새들이, 노루들이 마음껏 날며 뛰어다니는 것을 본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이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비결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비법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처럼 추웠던 지난해의 경기불황은 올 해도 나아질 전망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은 보인다. 새롭게 들어선 오바마 정권에게 기대를 해 보는 것이다. 마음을 맑게, 밝게 해 주는 겨울 산행. 흰 눈 덮인 산에 올라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대지와 함께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은 마음건강, 육신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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