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없는 현대 병

2009-0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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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민 정 (수필가)

보통 여인들이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마련이다. 그 날은 한국에서 아이들이 대거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오는데 형제는 물론 가까운 친척이 부탁을 해서 선득 받아들였더니 순수해야 할 애들이 영악하다 못해 어른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도 그런 경험으로 이제는 형제간에 의가 상하겠지만 단연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도 남, 북간 이산가족이 아닌 부모는 한국, 큰자식은 미국, 다른 자식은 중국 그렇게 인터내셔날로 살면서 어쩌다 일 년에 한 번 가족 상봉을 하는 가정이 꽤 있었다. 그래서 생긴 말이 ‘기러기 가족’이라는 말도 있지만 요사이 가끔 벌건 대낮에 칼을 휘두르거나 총질을 해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핵가족으로부터 오는 소외감과 고독에서 오는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 마음이야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과외든 유학이든 어디고 보내겠지만 인간이란 태어나서 기어 다니다가 걸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되듯, 공부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인생 수업에 학업까지 따라 갈 수가 있다, 그런데 무작정 높게만 올려 보내려니 자연 애들다워야 할 아이들이 영악하다 못해 뜻 아닌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 사실이었다.


언젠가 우리아이들이 한참 공부할 때, 주재원인지 아니면 교환교수 또는 사업차 외국에 나온 가정의 아이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친구도 없지만 외롭게 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미국학교에선 한국같이 인성교육이나 문화 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닌, 오직 공부 그 자체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부모들이 가정교육이나 정서적인 문화 교육을 알아서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전혀 그런 교육이 삭제된 상태에서 그나마 인간관계는 물론, 선후배 관계의 끈끈한 추억 또한 없으니 자연히 외톨박이 외로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 후 그 학생들은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견디지 못하고 다시 외국으로 나온 것은 어릴 때 추억도 없지만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며 살지 않았기에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는 컴퓨터나 어떤 게임 기구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삶의 목적,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올해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기저기서 동창회, 향토회 등 각종 행사를 한다고 광고문이 신문마다 실렸다.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다보면 가끔은 동창들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도 하고, 성공을 해서 보란 듯이 금의환향을 꿈꾸어 보는 마음에서 그런 모임을 갖게 마련이다.

그렇듯 인생이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이고 어차피 혼자 태어나서 혼자 가는 생의 행로지만 그래도 때론 나도 이 만큼 산다는 과시도 하고 싶고, 무엇보다는 내 자신에게 열심히 살았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도 부모, 형제는 물론 친구, 친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다 삭제된 생활에서 무슨 희망과 미래가 있겠는가. 공부, 출세를 위한 목적도 좋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인생의 순리대로 아이들 또한 그들의 인생에 바다, 강, 하늘, 그리고 나무, 숲 모두 어울려 주어야 한다. 그래서 건강하고 싱싱한 아름들이 나무들 같이 세상에 우뚝 서서 가슴 가득히 넓은 세상이 마음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또한 부모된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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