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의 양면성

2009-0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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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영 휘(언론인)

제 2차 세계대전 때 두 다리를 잃은 65세의 러시아 상이군인 이야기다. 월 4천원으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65억 원이라는 거액의 유산이 날아들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움과 동경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그다지 만족해하는 기색이 아니다. 불구의 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며 알콜 중독자가 된 그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지 않
다는 생각이었다. 오나가나 돈·돈 하는 세상에 이 벼락부자는 ‘참다운 행복’이 무어냐고 되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진실로 자신이 바라는 바는 방 한 칸 딸린 아파트를 얻어 그를 돌봐 주며 마음이 통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여 오순도순 사는 것이라고.

삶의 질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돈과 지위, 건강과 명예를 꼽는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면 생활수준이 높아진다고 하고, 그게 바로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사기와 절도, 부정과 비리, 폭력과 살인, 이 세상 범죄의 대부분이 돈으로 인해 일어난다. 돈이 갖는 여러 가지 이점에도 불구하고, 한 편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런 여유에서이고, 러시아의 상이 노인이 돈에 혹하지 않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 일 게다.


세계 경제 대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일본 국민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소득이 비교적 높은 한국과 대만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사람들이 더 행복해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즘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과 ‘행복은 재산 순이 아니다’라는 말은 서로가 닮은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고, 부(富)가 인간 평가의 기준처럼 보일지라도 사람이 사는 데는 그 밖의 다른 요소가 있음이다. 재화(財貨)가 삶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인생의 가치를 높이고 삶의 보람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산이 많은 집안에서는 어버이 시신을 머리맡에 두고 송사가 벌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재벌의 불법·편법상속 문제로 세무조사를 받는 장면이 TV 화면을 어지럽게 하기도 하고, 십년지기의 우정이 돈 거래로 무너질 때가 있다. 형제 사이에 담을 쌓는 것도 돈이 원인이 될 때가 많다. 반면, 부모로부터 금전적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가난한 집안에 효도하는 자식이 많음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물질적 탐욕은 인간적 본성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돈이 불행을 만든다고도 하고, 돈은 행복의 기본 조건이라고도 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돈이라는 요물은 야누스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돈은 번뇌의 근원이며 영혼의 파괴자일 수 있다.

하면서도 돈은 살림살이를 편하게 하고 때로는 만능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봉건 왕조 시대에도 돈이 양반이라는 속담이 나왔을까. 결론은 이렇게 맺고 싶다.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을 매개로 일어나는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돈을 벌고 쓴다는 게 속세를 사는 우리로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마다 제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양심의 소리와 머리가 판단하는 상식의 범위를 크게 일탈하지 않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발 뻗고 편히 잠을 자고 떳떳이 얼굴을 쳐들고 다닐 수 있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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