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것의 가치

2009-01-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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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효 섭 (아동문학가·목사)

며칠 전 허드슨 강에 여객기가 불시착 하였다. 조종사의 기지(奇智)와 용기로 155명 전원이 무사하였다.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 하자마자 캐나다 기러기 떼와 두 번 부딪쳤으며, 엔진 두 개가 모두 멈춘 사고였다고 한다. 새 떼가 비행기 엔진에 말려들어가는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기러기, 갈매기 심지어는 참새 떼에 부딪쳐도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가장 큰 사고는 1960년 3월 10일 보스턴에서 출발한 여객기가 기러기 떼에 부딪쳐 엔진 네 개를 한꺼번에 잃고 바다에 추락하여 62명이 죽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뉴져지 티터 보로 비행장은 자가용 비행기들만이 이용하는 작은 공항이다. 여기에 ‘터보’라는 이름의 개가 산다. 터보는 오랫동안 개 수용소에 있었다.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개 수용소에 와서 원하는 개를 골라간다. 그러나 터보를 데려가는 사람은 없었다. 워낙 못생긴
데다가 얼굴에 흉터까지 있고, 짖는 소리도 얼마나 기운이 없는지 어떤 사람은 “감기에 걸린 노인의 기침소리 같군!”하고 악평까지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개 사육사인 지미가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터보에게 똥, 오줌을 보게 하려고 밖에 데리고 나갔는데 멀리 잔디밭에 많은 캐나다 기러기들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 터보는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기러기 떼를 향한 터보의 짖는 소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호령하는 나팔 소리 같았다. 기러기들은 살짝 날아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 다시 그 쪽으로 달려가 기러기를 쫓는다. 일반적으로는 인기가 없는 터보에게 숨겨진 재주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때 지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티터 보로 비행장이 기러기 떼 때문에 사고도 많이 나고 방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는 신문 보도였다.

이 후의 이야기는 계속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짐작할 것이다. 터보는 취직시험에 만점으로 합격하고 편한 잠자리에 잘 먹고, 좋아하는 기러기 쫓기를 즐기며 살게 되었다. 비행장측도 횡재를 한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된 것이다. 개 수용소의 터보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지만 비행장의 터보는 커다란 존재였다. 우리는 간혹 작은 것의 가치를 못 보고 넘길 때가 많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가치도 과소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는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큰일을 맡기겠다.”고 하셨다. 적은 것의 가치를 아는 자가 큰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길버트 스코트씨는 영국의 저명한 건축가였다. 그가 설계한 리버풀 대성전이 준공되었을 때 기자가 물었다. “직접 설계하신 이런 대 건축이 눈앞에 있을 때 정말 자랑스러우시겠죠?” 스코트씨가 대답하였다. “작품의 크기에 따라 기쁨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젊어서 공중전화 부스
도 설계했는데 기쁨은 같았습니다.” 대가는 역시 다르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 기울인 것이다. 피카소는 5분 동안에 그린 데상(素描) 하나하나에도 지극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유머이다. 소련 벌목장에서 일하는 아주 체구가 작은 유대인이 있었다. 너무나 일을 잘 하기 때문에 보스가 물었다. “자네는 벌목을 어디서 배웠나?” “아라비아 숲에서 배웠습니다.”

“아라비아에 무슨 숲이 있단 말인가?” “제가 숲을 다 베어버려 지금은 사막이 됐습니다.” 유대인종은 체구가 작은데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민주주의를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이기는 제도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지만 소수를 무시한 다수의 독주(獨走) 역시 민주주의는 아니다. 표결이라는 결의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표결 이전의 토의, 즉 여러 사람의 소리를 모으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따라서 소리를 무시한 표결은 이미 민주주의 정신에서 이탈한 것이다.

에디슨의 발명품 중 ‘전기투표계수기’가 있다. 회원 각자가 투표함에 나갈 것 없이 앉은 자리에서 투표가 되고 집계까지 나오는 기계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이 기계 구입을 절대 다수로 부결시켰다. “이런 기계를 설치하면 토론 시간을 줄이고 얼른얼른 투표를 해버릴 염려가 있다. 그 결과 소수의 의견이 충분히 토의될 기회가 적어질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에디슨도 의회를 상대로는 돈벌이를 못했다고 한다. 다수파가 소수파의 의견과 비판을 지긋이 들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인내의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이다. 수만 많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얕은 생각 때문에 머리수를 모으기 위한 부패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다수가 반드시 진리는 아니
고 큰소리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예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는 말씀으로 다수의 유혹을 경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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