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떡국 한 그릇의 기쁨

2009-01-23 (금)
크게 작게
심재희(취재1부 기자)

지난 주말 브롱스 한인노인회가 무료 떡국잔치를 한다기에 취재차 방문했었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한참을 북쪽으로 올라간 다음에 당도한 브롱스 한인 노인회관은 여느 경로회관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들어설 때 입구가 쇠창살로 된 것도 그랬고, 입구 문이 온통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가 돼있는 것도 왠지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안으로 들어서자 노인 회관을 가득 메운 많은 한인노인들이 떡국을 들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훈훈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습관처럼 사진기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로철진 브롱스 노인회장이 다가와 “취재 끝나면 넉넉하게 있으니 떡국 한 그릇 들고 가요”라며 “설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연 떡국잔
치가 이렇게 인기가 좋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설립 10년도 채 안된 경로회관들도 매년 떡국잔치를 하는데 설립한지 20년이나 된 장수 한인노인 단체가 올해서야 처음 떡국 잔치를 열게 된 데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그 오랜 시간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떡국잔치를 연적이 없냐고 묻자 로 회장은 “다른 경로회관들은 한인밀집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독지가들의 기부금도 많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우리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보니까 이런 잔치를 연다고 해도 후원자들이 쉬이 모이질 않아 힘들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떡국잔치도 우여곡절 끝에 열게 됐다고.

지난해 말 브롱스 한인 노인회 이사회가 처음으로 떡국잔치를 열기로 결정했지만 재정상황이 여의치 않아 내심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같은 상황을 전해들은 동산교회가 500달러를 후원해 주었다. 이 후원금으로 어떻게든 200명분의 떡국을 준비해 보려고 했지만 금액이 턱없이 모자랐고 이에
사정을 들은 낙원잔치의 하은희 대표가 무상으로 떡국잔치에 필요한 음식을 조달하겠다고 나서면서 겨우 잔치를 열 수 있었다. 로 회장은 “우여곡절이야 있었지만 회원들에게 따뜻한 떡국 한 그릇 씩 대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사정이 된다면 다음해에도 또 떡국잔치를 열고 싶다”며 웃음 지었다.

모든 단체가 똑같은 후원금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브롱스 한인노인회처럼 20년이나 된 장수기관이 운영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브롱스 한인노인회처럼 한인밀집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한 곳 일수록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는 한인 타운과 먼 곳에서 한인노인들의 안식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는 한인사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단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작은 정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