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말은 살아있는 창조의 힘

2009-0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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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말이 씨 된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랫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하면, 말이 씨가 되어 그대로 이뤄지니 조심해서 좋은 말을 쓰라고 가르쳐 왔다.

고운 말을 꽃씨처럼 주위에 꽃을 피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들풀 하나마저도 씨앗이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지면 수없는 꽃을 피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도 꽃씨처럼 누군가의 마음 안에 떨어져 삶 안에 꽃을 피운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날 왕이 두 신하에게 각기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해 오라 명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신하가 가져온 것은 똑같이 ‘혀’였다. 혀에서 나오는 말이 선하게도 되고, 가장 악하게도 된다는 가르침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누군가의 마음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주듯 살아서 움직인다. 그래서 세치 밖에 안 되는 혀지만, 혀에는 온몸을 다스릴 엄청난 힘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콩을 심으면 콩이,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이것은 창조주의 자연법칙이며, 변할 수 없는 창조주의 의지이며 질서다. 거짓말을 해놓고 진실을 기대할 수 없는 것 또한 하느님의 창조법칙이란 말이다. 이런 불변의 질서 속에 살면서도 유독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은 창조 법칙을 벗어나 보려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무생물인 물과 바위에서부터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거짓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에 말이다.

이때문인지 언젠가 스님 한분이 자기를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는 중생들에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면서 천방지축 날뛰는 인간의 거짓된 삶을 속시원히 설파했다던가. 알고 보면 인간만이 가라지를 뿌려놓고 밀을 추수하려는 그런 우를 범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겠다.

더욱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위력이 있다. 6.25 전쟁 때 빨치산들이 우리 마을을 장악하고 인민재판을 한 적이 있다. 머슴들에게 인심을 잃은 지주들이 상당수 희생됐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지주의 생명이 왔다갔다 했었기에 말이다.

이처럼 눈에 띄게 드러난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로써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의 말 한 마디로 평생 가슴에 비수가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사는 아내가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아내의 무시하는 듯한 말 한 마디가 한 남자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무심코 흘린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자녀의 영혼을 억누르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말이다.

그래서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칼이나 총보다도 더 치명적일 수가 있다. 칼이나 총은 피할 수도 있지만, 사람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잘못 튀어나온 말 한 마디는 분명 사람을 해치는 흉기다.

반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말 한 마디로 삶이 꽃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격려 한 마디는 삭막한 삶을 온통 꽃밭이 되게 할 수 있다. 때로 살 수 없다고 포기한 인생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 또한 말이다.

그래서 금년 한 해는 말을 통해 복을 받는 은총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염원이다. 감사와 은혜, 격려와 사랑이 담긴 칭찬 한 마디가 배우자와 자녀, 친구 사이에 꽃 피고 기쁨 넘치는 천국이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은 진정 창조의 힘 아니겠는가.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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