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혼의 길목에서

2009-0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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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훼이스 크리스찬대학 교수)

세월을 꼬챙이에 꿴 곶감 뽑아먹듯 하나 하나 뽑아 먹다보니 어언 인생의 황혼이란 고개마루까지 이르렀다.‘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최희준의 노래가락이 자못 구성지게 마음에 와 닿는 시절이다.이제 와서 보면 인생은 길고도 짧은 여정이고 아름다운 고해(苦海)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한참 시구를 음송하다가 뜬금없이 우리가 이렇게 마주보고 좋은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은총이다. 이 은총을 갚으려면 남의 고통을 들어주는 일밖에 없다고 하면서 오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며 살아가는 20세기의 성인 슈바이처 박사를 본받을 선물”이라고 했던 스승 김춘수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태평양을 건너 꿈과 기회의 나라 이곳에 와서 한 시민으로, 한 사회인으로, 가장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한 세월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어느 날 곤한 낮잠에서 깨어나 거울 앞에 섰더니 그 거울 속에서 그립던 스승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법 없이도 사신다던 의연하고 온유하던 그의 모습과 달리 피곤에 지친 민망스레 머리카락만 하얗게 된 닮은 꼴이 멀건히 나를 응시하며 서있지를 않은가.그럭저럭 인생을 살아온 단계를 기억해 보노라면 어릴 때는 놀이 중심으로 웃으며 삶을 체득했고, 소년기에는 학습의욕을 키우고, 사춘기에는 정체성을 찾아 고민도 하고 청년기에는 열정으로 낙망과 학문을 하며 장년기에는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생산에 참여해 왔다. 그러다가 이제 노년기에 들어 이 과정을 다 겪으면서 살아온 삶을 통합하고 음미하며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살아온 인생의 굴곡에서 크고 작은 희비애락을 겪다보니 몸은 자연스레 노화되었지만 두뇌작용은 더 활발해진 것 같아 세상을 더 슬기롭게 관조하고 사색하면서 사는 것도 축복된 일이라고 본다.강의실에서 이따금 반짝이는 눈동자를 접할 때 보람과 함께 무거운 책무를 느낀다. 한 해만 더
하던 것이 7년이 됐으니 이제는 또 10년을 채웠으면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생긴다. 강의시간이 한 주에 두시간이긴 하나 젊은이들 속에서 호흡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쁜 일이다.

“자네,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여태 가방을 메고 다니느냐”고 곱게 핀잔을 주는 친구들은 아마 속으로 부러워서 빗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응수한다.젊어서 읽었던 고전이나 읽지 못했던 명작들을 도서관에 가서 마음놓고 넉넉하게 읽어보자. 그간 벼르기만 하던 명승지 몇몇 곳을 여행도 하고, 골프 레인지에만 나가던 것을 새해에는 필드에 나가 창공을 향해 높이 공을 날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세상은 많이 변했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핸드폰으로 대화하고 이메일로 편지할 정도로 달라졌
다. 2차대전 말기까지도 식당이나 버스, 화장실 사용에서 흑인을 차별했던 미국이 아프리칸 아메리칸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을 만큼 변화됐다.

9.11 사태 때 잃은 만큼이나 이라크전에서 귀한 목숨을 잃게 한 부시는 이라크 기자가 던진 신발바닥에 면상을 맞을 뻔 하였다. 한국 신문에 나오는 ‘강부자’와 ‘고소영’이 유명배우 이름인가 하고 주위에 물었다가 망신당한 코미디도 있다. 세상은 이래저래 심심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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